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를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오면 그때 자세히 볼 계획이었다. 이 날은 바로 다음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음식을 살 수 있는 마트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카메라와 귀중품이 들어있는 크로스백을 앞에 메고 그 위에 물건을 사면 넣을 작은 배낭을 메고서 아르바트 거리로 나섰다. 숙소를 찾아올 때는 급한 마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나니까 보이기 시작했다. 카페와 음식점, 이런저런 상점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한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휘날리던 대형 러시아 깃발이었다. 지금 있는 곳이 러시아라는 사실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거리로는 몇 백 미터 정도였고 고개 하나만 넘으면 바로 역이었다.
역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 호스텔 직원이 알려준 마트를 찾아 나섰다. 마트가 있는 건물은 그 일대에서 제일 커 보이는 쇼핑몰이었다. 건물 외벽에 ‘Clever’라는 대형 간판이 걸려 있었고, 건물 앞 도로는 버스 터미널처럼 들어오고 나가는 버스들로 붐볐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앞에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밑에 마트도 보였는데 바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쇼핑몰은 어떤지 구경하고 싶었다.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죽 돌아봤는데 백화점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시계, 잡화를 비롯해서 리바이스와 같은 다국적 브랜드, 여성 의류 매장까지 제법 다양한 매장이 입주해 있었다. 헬스클럽도 있고 맨 꼭대기 층에는 식당가도 있었다.
천천히 쇼핑몰을 둘러본 후에 지하에 있는 마트로 내려갔다. 러시아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가 궁금해서 마트를 정말 구석구석 둘러봤다. 커피나 차, 과자 같은 것은 상표만 러시아어로 쓰여 있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과일 코너에 가니까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내 주먹보다 훨씬 작은 사과들, 그중에서도 노란색 사과에 눈길이 갔다. 사과는 굉장히 흔한 과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앙증맞은 사과들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생수 코너에서는 일반 생수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탄산수를 많이 마신다고 하던데 생수 코너에 탄산수가 정말 많았다. 한국에서 탄산수를 몇 번 마셔본 적이 있어서 맹물에 탄산이 들어간 게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 실수로 탄산수를 고를까 봐 주의를 기울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수첩에 적어놓은 '탄산'이라는 러시아어 단어를 보며 탄산수들을 피해 갔다.
조리 음식을 파는 코너도 기억에 남는다. 고기로 만든 음식들 중에서 어떤 것은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닭고기나 생선으로 만든 음식, 샐러드와 같은 것들은 내가 먹기에도 부담이 없어 보였다. 다음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가지고 갈 음식들을 고르느라 마트에서 한 시간이 훨씬 넘게 있었다. 원래 저녁은 괜찮은 식당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시간을 보니 식당을 찾아 돌아다닐 여유가 없었다. 빨리 씻고 자기로 했던 터라 눈여겨봐 둔 과일과 물, 샐러드, 빵을 사서 마트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