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에서의 만찬

by 히다이드

다른 러시아 사람들은 뭘 먹나 살펴봤는데 테이블 위에 빵과 햄, 컵라면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간혹 어떤 테이블에는 절임 야채가 있기도 했는데 그런 테이블이 많지는 않았다. 몇 끼 동안 야채도 없이 빵과 햄, 라면만 먹으면 금방 질릴 것 같았다.


사람들이 빵과 햄을 자를 때 쓰던 칼이 생각난다. 식칼보다는 잭나이프에 가까웠는데 액션 영화에서 킬러들이 쓰던 날카로운 접이식 칼로 빵과 햄을 썰어서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조용히 얘기하면서 먹는데, 시끄럽게 먹으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지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먹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컵라면을 먹는 방법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 가며 가락국수를 먹듯이 먹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면이 국물에 완전히 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파게티를 먹듯이 먹었다. 한참 동안 불린 컵라면에는 국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면은 불을 대로 불어 있었다. 처음에는 라면에 물을 붓고 한참이 지나도록 먹지 않아서 까먹은 줄 알았다. 먹을 시간이 됐다고 알려주려고도 했는데 한 두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는 걸 보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며칠 후 내가 컵라면을 먹을 때 이것이 바로 '팔도 도시락' 컵라면이 탄생한 나라에서 먹는 방식이다라고 외치듯 국물까지 후루룩 들이키며 요란스럽게 먹었다.


라면을 불려 먹는 것도 특이했지만 라면을 먹는 그릇도 특이했다. 개인적으로 준비한 플라스틱 도시락에 보통 라면을 집어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라면은 열차에 타기 전에 미리 사 온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먹는 게 더 싸서인지 아니면 스티로폼 용기가 환경 호르몬 때문에 좋지 않아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앉은자리가 온수기와 가까워서 플라스틱 도시락에 라면을 담은 사람들, 컵에 홍차 티백을 넣은 사람들이 계속 내 옆을 지나갔다. 사람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나도 준비해 온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한 음식은 열차 안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화려했다. 싱싱한 과일과 바게트 빵, 잼, 마트의 조리 음식코너에서 산 샐러드, 약간의 견과류까지 영양과 맛 모두를 고려해서 준비한 흠잡을 데 없는 식단이었다. 동행하는 친구는 열차 안에서 음식을 조달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컵라면만 몇 개 있을 뿐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처음 보는 러시아인들에게 대가 없이 받았던 호의를 떠올리며 내가 준비한 음식을 같이 나눠 먹기로 했다. 한국인 동행과 함께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두려움과 설레는 맘으로 어두워지는 창밖을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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