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

by 히다이드

열차에서의 첫 밤을 보내고 찌뿌둥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머리 밑에서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기적으로 흔들림이 느껴지는 데다, 겨우 잠들만하면 누군가 내 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열차 안에 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앉으려면 자리에 깔아놓은 침구를 정리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며 보니 위층 침대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열차는 가끔씩 정차했는데, 그중 한 곳에서 중국인 부부가 내린 것 같았다.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게 못내 아쉬웠다.


꽤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앉은 사람과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 일행이 아니라 열차 안에서 처음 만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끼리도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차에 타기 전에 나는 화장실이 두 개 밖에 없어서 아침에 서로 먼저 씻으려고 분주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열차 안의 사람들은 씻는 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제일 부지런히 씻었다. 아침 세수는 물론이고 자기 전에는 발까지 씻고 잤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화장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했는데 세면대가 쓰기에 불편했다. 세면대 크기가 작은 것도 문제였지만, 물이 계속 나오는 게 아니라 수도꼭지를 한 번 누르면 “윙” 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물이 나오다 끊기기를 다섯 번 정도 반복하고 끊겨 버렸다. 열차가 역에서 물 보급을 한 직후에는 물이 많아서인지 여섯 번, 일곱 번까지도 나왔지만 물이 얼마 없을 때는 세네 번만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씻을 때 손놀림을 굉장히 빨리해야 했다. 물로 얼굴과 목을 대충 닦아내고, 세안제를 손에 덜어 거품을 낸 다음, 얼굴에 바르고 물로 헹구는 일을 “윙” 소리가 다섯 번 들리는 동안에 마쳐야 했다. 수도꼭지를 다시 누르면 물이 또 다섯 번 나오지만 처음 한두 번만 쓰고 그냥 나오는 게 아까워서 웬만하면 처음 다섯 번 안에 끝내려고 했다.


아침 빵을 먹고 세수를 한 후에 자리에 앉아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한국인 동행과 간간이 얘기도 나눴다. 그러다 한 역에서 열차가 정차했는데 40대 초반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명의 러시아인 남자가 열차에 탔다. 중국인 부부가 자리를 비운 위층 침대에 가방을 놓는 것을 보고 반가워서 어떻게든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했는데 둘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40대의 남자는 바로 자기 침대로 올라가 버렸고, 20 대 남자도 내 옆에 앉긴 했지만 자기 이름만 얘기해 줬지 말을 걸어도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그러다 20대 남자도 자기 침대로 올라가 버렸고 이따금 40 대 남자와 둘이 얘기를 나누는 게 들려왔다.


다시 한국인 동행과 둘이 얘기를 나누는데 계속 침대에 있을 것처럼 보이던 40 대 남자가 밑으로 내려왔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덩치가 좋고 약간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였다. 가방에서 컵라면을 꺼낸 후에 물을 받아왔는데 테이블 위에 컵라면을 놓으려던 남자가 나와 한국인 동행에게 갑자기 화를 냈다.


테이블을 손으로 가리키며 러시아어로 뭐라고 하는데, 테이블 위에는 나와 한국인 동행이 벌려놓은 음식물과 개인 물품이 잔뜩 널려있었다. 위층 사람들도 식사할 때 테이블을 사용하는데 우리가 그 점을 잊고 있었다. 둘이 급하게 테이블을 치웠지만 남자는 화가 가시지 않는지 우리에게 계속 뭐라고 떠들어댔다. 내가 러시아어로 “죄송합니다.”라고 얘기했는데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었던 것 같다. 나한테 방금 무슨 말 했냐고 되묻듯이 귀를 갔다 댔는데,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하자 그제야 조용해지더니 컵라면과 통조림, 마요네즈 등을 꺼내놓고 식사를 시작했다.


이 사람이 컵라면을 먹는 방법은 다른 러시아인들보다 더 독특했다. 소고기 통조림에서 고기를 듬뿍 덜어내 컵라면에 넣고 그 위에 마요네즈를 뿌린 후에 빵과 같이 먹었는데 아무리 봐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남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나와 한국인 동행은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20 대 남자는 위층 자기 침대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얼마 후 40 대 남자가 식사를 마쳤다. 다시 자기 침대로 올라갈 줄 알았는데 이번엔 올라가지 않고 내 옆에 앉았다. 얼굴 표정이 풀려 있는 걸 보고 용기를 내어 이름을 물어봤는데, 40 대 남자는 “세르게이”라고 자기 이름을 얘기해 줬다. 침대에서 날 쳐다보던 20 대 남자도 밑으로 내려왔는데, 하얀 피부, 파란 눈,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20 대 남자의 이름은 “지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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