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인들이 열차에 있었는데 차분한 분위기의 열차 안에서 이 군인들만은 예외였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떠들었는데 군인들 중 두 명이 우리 자리로 왔다.
휴가를 나오면서 군용 전투 식량을 한 박스 챙겨 온 것 같았는데 우리한테 하나를 팔려고 했다. 둘 중 한 명이 전투식량이 든 작은 상자를 보여주면서 손가락으로 지폐를 세는 시늉을 했는데 나와 한국인 동행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 사겠다고 하자 전투식량을 우리 자리에 팽개치듯 던져놓고 자기 자리로 가 버렸다. 한국인 동행과 같이 상자를 만져보며 생각지도 않게 러시아군 전투식량을 맛보게 됐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자기 자리로 갔던 군인이 다시 우리한테 오더니 전투식량을 빼앗듯이 챙기고서는 비스킷 하나만 우리한테 던져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와 한국인 동행이 군인이 던져놓고 간 비스킷을 맛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좀 전에 왔던 두 명 중에 다른 한 명이 납작하고 조그만 상자를 가지고 우리한테 왔다. “샤흐마뜨이”라고 했는데 마침 내가 공부했던 러시아어 교재에서 본 단어였다. “그래”라고 대답하자 군인은 상자 안에서 작은 체스 판을 꺼냈다. 다섯 판을 뒀는데 군인이 체스를 참 잘 뒀다.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고 빠르게 말을 옮겼는데 나는 한 판 밖에 못 이겼다. 평소에 체스를 많이 두는 사람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군대에 있을 때 봤던 장기를 즐겨두던 선임이 생각났다.
게임을 마치고 다가와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사과 하나를 선물했다. 아시아계 러시아인이었던 군인의 이름은 "살갈"이었다. 같이 체스를 둔 것 말고도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플랫폼에서 베레모에 약을 뿌리던 게 기억난다. 무슨 약인지, 왜 모자를 햇빛에 쬐이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내 러시아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군대의 생활환경이 열악하니까 빈대나 벼룩 같은 것들이 모자에 생겨서 소독하고 있는 것 같다고 혼자 추측할 뿐이었다.
체스를 같이 둔 게 인연이 돼 그 군인과 객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곤 했다. 이틀 뒤에 군인은 내렸는데, 내릴 때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넸다. 서글서글하고 성격도 좋아 보였는데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