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동행과의 작별

by 히다이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종착역인 모스크바 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6일 동안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고 열차 안에 벌여놨던 짐들을 정리했다. 침대보와 수건을 차장에게 반납하고 기차표를 돌려받고 난 후에 자리에 앉아 한국인 동행과 마지막 얘기를 나눴다. 같이 사진도 찍고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 동행이 걱정돼 '경찰'이라는 러시아어 단어를 알려주며 혹시 나쁜 사람들을 만나면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도착까지 50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고 50 분을 갈 때는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횡단 열차에서 6 일을 보내고 나니까 시간관념이 바뀌었는지 그 50 분이 짧게 느껴졌다. 다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6일 동안은 열차 안에만 있으면 됐는데 이제 다시 길을 찾으며 이동해야 했다. 혹시라도 다음에 탈 열차를 놓치면 전체 일정이 틀어지게 돼 있었고 혼자서 러시아 거리를 돌아다니다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몰랐다. 창밖으로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모스크바의 모습을 바라보며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열차가 멈춰 서고 캐리어 가방을 끌며 플랫폼에 내릴 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6 개의 시간대를 가로지르며 도착한 모스크바, 그곳의 파란 하늘은 한국에서 보던 것과 차이가 없었다. 안내 방송을 들으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후에 캐리어 가방을 끌고 사람들을 따라 출구로 걷기 시작했다. 역사 지붕에 러시아어로 ‘모스크바’라고 써진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캐리어 가방을 밀고 갈 때는 음식물 상자 때문에 고생했었는데 음식물 상자가 없으니까 끌고 가는 게 한결 쉬웠다.


역 앞에서 한국인 동행과 헤어졌다.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모스크바 공항으로 갈 거라는 그는 일단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할 거라고 했다. 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삽산’ 고속열차를 타야 했다. 길게 얘기하진 않았다. 둘 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6 일간 함께하며 정이 들었지만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인 동행이 먼저 가겠다며 인사를 했고 서로 여행 잘 하라며 악수를 한 후에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에서 회포라도 풀게 연락처라도 주고받을 걸 그랬다. 그 당시 나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차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니까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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