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은 옷 정리로 완성된다. 주부는 해마다 두 번, 옷장과 서랍의 옷을 대대적으로 들었다 놓는 옷 정리를 피해갈 수 없다. 모직 코트는 세탁소에 보내고, 스웨터는 아기 목욕시키듯 울 샴푸로 조물조물 만져준다. 지난 계절의 매운바람을 막아준 고마운 옷들의 먼지와 묵은 때를 벗기고 수납함에서 쉬게 하려면 주말은 빨래로 시작해 빨래로 끝난다. 봄을 속히 맞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옷 정리를 했다가는 변덕스러운 꽃샘추위에 개 떨듯 떨기 십상이다. 사람 헛갈리게 하는 봄, 어제는 왔는데 오늘은 가버린 듯한 봄에 속지 말고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벚꽃이 만개해 흩날리기 시작하는 주말이 옷 정리의 적기다.
중3 큰아들은 옷이 몇 벌 없다. 티셔츠 다섯 장, 집업 후드 티 한 장, 청바지와 트레이닝 팬츠가 각각 두 벌이다. 속옷류를 제외하면 이것이 전부다. 심지어 티셔츠 다섯 장 중 세 장은 5촌 당숙에게 물려받은 10여년 전 스타일 티셔츠다. 나머지 두 장도 내가 입다가 큰아들에게 넘긴 구제품이다. 큰아들은 그런 옷을 아무 말 없이 입어준다. 무던하고 착하니까, 집안 형편 생각해서 비싼 옷, 유명 브랜드 사달라고 떼쓰는 무개념 진상 자식이 아니니까 군소리가 없군, 하고 섣불리 감동하면 안 된다. 큰아들은 뭘 입어도 있어 보이는, 해사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갖춘 미소년이다. 굳이 옷으로 체형 결점을 커버해 줄 필요가 없다. 맨땅을 뚫고 올라오는 비비추 순처럼 쑥쑥 자라니, 2년 전에 산 바지 단이 발목 위로 깡총 올라가버렸다. 그의 ‘간지’를 위해 새 트레이닝 바지나 한 벌 주문하면 되겠다.
초6이 되어 산전수전 다 겪었다며 도통한 분위기를 풍기는 딸은 핑크 계열 색상, 레이스 장식, 치마와 레깅스를 죄다 거부하는 유니섹스 패션 모드를 고수하고 있다. 또래 평균 신장에 못미치는 키(152센티미터) 때문에 그녀의 패션 취향에 맞추어 옷을 사기가 쉽지 않다. 주니어 사이즈의 끝물이면서 어른 사이즈 XS는 아직 이르니, 결국 그녀의 옷서랍은 오빠와 동네 언니들에게 물려받은 옷들로 채워졌다. 남색 티셔츠, 남색 바지, 남색 조끼, 남색 후드티로 낙찰되니, 해군에 입대할 판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 아들은 아무 옷이나 입기를 거부한다. 옷 입었을 때 느껴지는 천의 질감이 조금이라도 거칠다 싶으면 바로 퇴짜를 놓는다. 착용감이 ‘벌거벗은 임금님’ 수준에 도달해야 만족하니, 목폴라, 셔츠, 청바지는 그의 옷 서랍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 옷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옷은 저래서 안 되니, 태권도장에서 단체구입한 트레이닝 상하복만 남는다. 엄마는 초등 1학년생을 귀엽게 입혀 내보내고 싶은데, 고시생 스타일을 고수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가 ‘단표누항에 흣튼 헤음 아니하는’ 안빈낙도의 자질을 타고 나 가정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을 감사하는 편이 낫다.
남편은 초능력자다. 진회색 바지에 흰 양말을 신을 수 있다. 신혼 초에는 남편의 ‘무념무상 패션 스타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었다. 그러다가 타인의 스타일에 과하게 참견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진회색 바지에 흰 양말을 신은 남편에게서 좀 떨어져 앉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남편은 스크루지다. 면 티셔츠도 오래 입으면 목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목 부분 시접에 구멍이 난다. 그렇게 구멍이 난 티셔츠를 조용히 버리는 것이 내 임무다. 다른 집에도 스크루지 남편이 산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었으나 내 남편은 거기에 한 수를 보탠다. 남편은 헐크다. 뾰족한 엉덩이와 소매를 당기는 습관 때문에 종종 바지와 셔츠가 찢긴다. 그의 옷장에 들어간 옷은 수명을 다하고 사망까지 한다. 남편은 패션 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는 분이다.
가족 구성원들의 옷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닌데, 주말 이틀 내내 옷 정리를 한다는 것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원래 주부가 하는 일이 그렇다. 티끌 모아 티끌이랄까. 자잘한 것들을 모아 처리하니 큰일인데, 그 큰일은 남이 보기엔 별 것도 아닌 자잘한 일로 보인다. 빨고 털고 널고 개고 넣는 일이 필요 없는, 그저 겨우내 털을 불렸다가 햇빛 쪼이며 혓바닥으로 슥슥 줄이면 되는, 내 집 괭이의 묘생이 부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