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알리오 올리오 - <14. 핫케이크>의 변주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남편은 식구들의 ‘주말’ 삼시 세끼를 책임진 주부다. 최근의 변화다. 남편은 결혼해서 16년의 365일 동안, 5800여 일에 걸쳐 무엇을 먹일까 고민한 적이 없었다.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조리를 하든, 배달 음식을 시키든, 나가서 먹든, 하루 세 번 식구들의 위장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남편의 대뇌 피질에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내가 주부로 떡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재취업 이후 달라진 삶의 변화 - 화장실 수납장에는 수건이 없고, 먼지는 공이 되어 뭉쳐져 굴러다니고, 냉장고에는 반찬통의 반찬들이 발효되는 - 에 대해 남편은 낯설어하다가 결국 분노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의 그러한 반응에 적잖이 실망했다.


직장의 인생 선배들께 여쭈었다. 남편이 저의 재취업으로 인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답은 명쾌했다. “최소 1년, 최대 10년.” 나의 경우, 2년 정도 걸린 셈이다. 물론 그 2년은 단지 물리적인 개념, 시계로 재는 시간을 말한다. 천년 같은 하루도 꽤 많았다. 남편은 안방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가보다 싶었다. 남편과 내가 주고받은 그 시기의 ‘지랄발광’은 나중에 좀 다듬어 따로 적어볼 생각인데, ‘지랄발광’을 할 때도 그때처럼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은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침묵 속에 머무는 두 사람, 그 침묵 속을 떠다니는 음습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제일 괴로웠다.

나와 남편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서로를 위해 입 다물고 묵묵히 봉사한 부분을 굳이 말로 옮기지 않았다. 남편은 신혼 초부터 출근 당일에 집에 돌아오기 어려울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얼굴을 봐야 말을 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들어온 남편에게 이말 저말 하기가 내키지 않았다(그 배추는 소금에 절인 게 아니라 알콜에 절여져 있기도 했으니 내 말이 입력될 수도 없었다). 또한 나와 남편의 가정적, 종교적 배경이 그런 생각을 공고히 하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내 엄마와 남편의 부모님 모두 말씀에 엄살이나 과장을 거의 섞지 않으신다. 그분들이 삶을 묵묵히 지고 가는 모습을 보며 입을 꾹 다무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미덕은 무슨. 미더덕도 못 된다. 말을 안 하는데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찌 알까.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전 인류를 위한 대속의 피를 흘리시면서 ‘일곱 마디’나 하셨다.

남편과 내가 ‘지랄발광’을 통해 서로의 속을 보게 되고, 쌓인 말을 하게 되고, 적당한 거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되면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주중에 육아와 가사에 쓸 시간을 거의 낼 수 없으므로 주말 전담반이 되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식사부터 일요일 저녁 식사를 남편이 맡아서 한 지 육 개월 정도 되었다. 최근에는 집들이 손님 초대도 주도적으로 했다. 물론 시행착오는 있었다. 간이 맞지 않거나 안드로메다 은하에 사는 외계인의 주식 같은 맛을 낸 적도 있었지만 조금씩 천천히, ‘주말용 주부’로 거듭났다. 특히, 하나뿐인 딸이 좋아하는 ‘알리오 올리오’를 능숙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 꽤 공을 들였다. 잘하겠다는 마음이 앞서 자꾸 소금을 치는 바람에 자기 전에 조용히 물을 들이켰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사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인류를 구원할 대단한 발견이나 생각을 해낸 적은 없지만, 주말 식사 준비를 통해 식구 사람과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었다. 그의 삶에서 회사 일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 일은 아니지만, 비록 어쩌다 하게 된 일이고, 어릴 때부터 마음속 깊이 간직한 꿈도 아니지만, 주말 끼니 공양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 되었다.

사진 : 알리오 올리오와 감바스를 섞은 혼합 메뉴. 바게뜨로 접시를 닦아 먹으면 설거지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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