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내 엄마가 역삼동 차병원 뒤에서 작은 한정식집을 하셨을 때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이다. 엄마는 생계 수단으로 식구나 손님이 아닌 ‘고객’을 위해 음식을 차려내셨다. 생계를 위해 출장 요리사로 일하셨고 교회 식당과 음식점 주방을 총괄하기도 하셨다. 세 자녀가 알아서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친구와 동업으로 작은 밥집을 운영하셨다. 그 밥집을 친구에게 넘겨주고 자신만의 식당을,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식당을 열게 되셨다. 식당은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100% 예약제로 운영되었다. 엄마는 그 식당을 경영하면서 큰돈을 벌지는 못하셨다. 돈을 벌기 위해 차린 식당이었지만 돈만 벌기 위해 영업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손을 거친 요리 - 한식, 중식, 일식에 양식까지 두루 섭렵한 경지에서 나오는 퓨전 코스 요리 - 를 맛본 손님들은 두 시간에 걸친 미각 행복을 맛보게 해 준 엄마에게 정중한 감사 인사를 몇 번씩 되풀이하셨다. 엄마 식당에는 갑질 고객, 진상 손님이 없었다.
환갑을 넘긴 엄마는 오랜 시간 주방에 서서 음식을 조리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엄마는 천천히 노인이 되고 있었다. 재료를 다듬고 준비를 하시던 여사님도 엄마와 함께 늙어가셨다. 엄마는 약간의 권리금을 받고 새 사장님에게 식당을 넘겼다. 식당 인테리어를 위해 가져다 놓았던 고가구와 도자기, 그림들은 엄마 집, 이모 집으로 각각 돌아갔다. 그 식당을 운영하면서 새로 들인 그릇장을 엄마는 내게 주고 싶어 하셨다. 엄마의 남사친이 만든 4단 그릇장은 꽤 공들여 만든 물건이었다. 잔무늬가 들어간 불투명 유리와 연한 주황빛이 감도는 색유리를 잘라 납땜한 문짝이 시선을 끌었다. 그때부터 그릇장은 내 집 주방을 지키고 있다.
딸에게 뭔가를 사 주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던 엄마는 내게 엄마의 물건을 주곤 하셨다. 그 대표적인 물건이 엄마의 신혼 그릇, 일본 세예이(SEYEI)사에서 만든 마가렛(MARGARETT) 홈세트이다. 흰 바탕에 노란 장미가 그려진 양식 세트 - 대중소 접시와 수프 볼, 찻잔과 받침 세트, 크리머는 테이블보를 씌운 식탁 위에서 말 그대로 꽃을 피웠다. 특별한 날, 귀한 손님을 집에 모신 날, 엄마의 홈세트는 유용했다. 양식 홈세트지만 무늬 없는 흰색 밥그릇과 국그릇과 함께 사용하면 한식 상차림과도 잘 어울렸다. 특히 뚜껑이 달린 커버드 베지터블(COVERED VEGETABLE)에 찜 요리를 담고 손님상에 옮긴 뒤 뚜껑을 열면, 근대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엄마는 내게 그릇장과 홈세트만 물려 주신 것은 아니었다. 음식을 하는 재미, 손님 접대의 기쁨을 내게 알려주신 분은 엄마다. 물론, 엄마의 음식 경지에 나는 감히 도달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재료의 맛을 살리면서도 쉽고 빠르게 요리할 수 있으면 족하다. 사람과 일에 치여 마음 헛헛한 친구에게 슬쩍,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고 소매를 잡아끌 수 있는 정도면 된다. 냉장고 야채칸 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양파 당근 감자 따위를 넣고 압력솥에 끓인 소고기 스튜를 커버드 베지터블에 담고, 바게트 빵 몇 조각만 함께 내면 된다. 노란 장미의 꽃말대로, 완벽한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