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구들의 삼시 세끼를 책임진 주부다. 결혼해서 16년의 365일 동안, 5800여 일에 걸쳐 무엇을 먹일까 고민했다.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조리를 하든, 배달 음식을 시키든, 나가서 먹든, 하루 세 번 식구들의 위장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나의 대뇌 피질에 충만하게 퍼져 있었다. 살아오면서 인류를 구원할 대단한 발견이나 생각을 해낸 적은 없지만, 끊임없는 식사 준비를 통해 네 사람의 생명을 오늘까지 유지시킬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이만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비록 어쩌다 하게 된 일이고, 어릴 때부터 마음속 깊이 간직한 꿈도 아니지만, 끼니 공양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되었다.
핫케이크(라고 쓰고 팬케이크라고 읽기도 한다)는 나의 주특기 대표 메뉴다. 눈 감고 해 본 적은 없지만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요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시판 핫케익 믹스를 사서 우유와 섞어 굽는 핫케이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 흰자에 설탕을 넣고 거품을 낸 머랭을 넣어 폭신함을 배가시킨 핫케이크다. 미세한 밀가루 냄새를 잡기 위해 바닐라 익스트랙이나 럼주 한두 방울을 떨어트리고,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반죽에 섞어 풍미를 더한 핫케이크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시 닦아낸 뒤 불 조절에 신경을 써 가며 표면의 연갈색을 균일하게 유지하도록 구워내는 핫케이크다. 여기에 버터, 메이플 시럽, 자른 딸기와 바나나를 곁들인다.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지만 밥이 주식의 자리를 잃은 지는 꽤 되었다. 씨리얼이나 토스트 혹은 씹을 것 없는 가루 곡물이 그 자리를 메꾼 지 오래다. 아예 '간헐적 단식'으로 아침상은 원천 봉쇄되기도 한다.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정신을 차리고 학교와 직장으로 뛰어나가야 하기에 식도락의 기쁨은 뒷전으로 밀린다. 상황이 이런데 달콤하고 따뜻한 핫케이크라니. 복음이다. 핫케이크를 프라이팬에서 접시로 옮기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제 온기를 잃고 그냥저냥한 밀가루 부침개가 되어버리기에,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한 장씩 핫케이크를 구워낸다. 내 집 식구들은 이불 속 잠자리에서 누린 따뜻한 달콤함을 식탁에서도 계속 맛본다.
지난 주, 결혼해서 미국에 사는 사촌언니가 휴가를 얻어 한국에 놀러왔다. 요즘 '핫'하다는 익선동에 가보고 싶어하는 언니 옷자락을 잡고 관광객으로 빙의, 인스타그램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카페에서 수플레 팬케이크를 먹었다. 눈 감고도 만드는 핫케이크 두 장을 2만 3천원을 내고 먹으려니 속이 쓰렸다. 비싸게 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 먹어보자는 언니의 강권에 40분을 기다렸다. 통유리 주방 앞에 서서 산업 스파이의 시선으로 월 매출 1억을 올린다는 수플레 팬케이크 제조 과정을 눈에 담았다. 자리에 앉아 직접 맛을 보니, 식감이 남달랐다. 식구들과 지인들이 찬탄해 마지않는 나의 핫케이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촉촉하고 폭신한 세계였다. 내 전의가 오랜만에 불타올랐다.
나는 레시피 없이도 맛있는 핫케이크를 만들지, 그러니 수플레 팬케이크 레시피를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지, 시간과 기운을 써 가며 익힌 요리 내공은 어디 가지 않지......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아뿔사.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구약성서 잠언 18장 12절)” 라더니 참으로 그러했다. 지난 2년 동안 주 4일 출근하게 되면서 프라이팬과 뒤집개를 내려놓은 결과는 처절했다. 빵이라 쓰고 떡이라 읽을 판이었다. 교만에서 돌이킬 방법은 오직 하나 뿐, 검색으로 찾아낸 레시피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순종의 열매는 식구들의 탄성과 조리 도구 설거지로 가득한 싱크대, 그리고 어쩌다 잘 하게 된 일을 관 뚜껑 닫을 때까지 계속 해 내리라는 사명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