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미역국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한국인의 대표 음식은 비빔밥, 불고기, ‘죽고 싶지만 먹고 싶은’ 떡볶이일 것이다. 비빔밥과 불고기는 기내식 메뉴로 선정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지 오래고, 떡볶이는 기분 부전 장애를 겪는 이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소울 푸드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이 세 가지 음식을 뛰어넘는 음식, 한국인을 탄생시킨 음식으로 미역국을 꼽으려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초유도 먹지 못하고 분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아기들을 제외하면, 한국 아기들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은 모유다. 모유는 분만실에 들어가 피와 땀, 눈물을 쏟으며 엉망진창이 된 여자, 그 여자가 갓 ‘엄마’가 되어 아기에게 처음 내놓는 음식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는 배고파서 먹는다. 즉, 살기 위해서 먹는다. 그런데 갓 출산한 초보 엄마는 자신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 - 아기 - 를 살리기 위해 먹는다. 입맛이 없어도, 먹고 싶지 않아도, 미역국을 들이켠다.

15년 전 봄, 제왕절개 수술로 첫아기를 낳았다. 병원에서 닷새를 머무른 뒤 아기와 함께 친정으로 왔다. 친정에 머무는 동안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셨는데, 당시 엄마는 내 미역국을 끓여 줄 상황이 아니었다. 엄마의 하나뿐인 아들, 군 복무를 두 달 남긴 말년 병장의 부고를 받았고, 그 죽음에 대해 군이 갖다 붙인 설명이 납득되지 않아 슬픔과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한 상태였다. 그래도 엄마는 나와 내 아기가 먹을 미역국을 끓였고, 나는 말없이 국 대접을 비웠다.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두 달 동안 미역국을 뽀안 젖으로 바꾸는 통로의 역할에 충실하다보니, 그 때 이후로도 아기를 둘 더 낳아 기나긴 나날 미역국을 ‘드링킹’하다 보니, 미역국은 ‘먹고 싶은’ 음식에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엄마가 되기 전 내가 가지고 있던 ‘미역국 호감’은 엄마 이름표를 붙인 후 ‘미역국 의무감’에 자리를 내주었다. ‘미역국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내 마음에서 좀처럼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대체로 저녁 메뉴를 고를 때, 내가 먹고 싶으면서 식구들도 잘 먹을 만한 음식을 낙점하는데, 미역국은 예외다. 가족들의 생일이 돌아와도 미역국을 끓이지 않는 것은 엄마로 거듭난 나의 ‘미역국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 화요일은 막내의 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케이크나 하나 사면 되겠다 싶어 퇴근길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셋째가 전화를 했다. 뭐든 확인하는 막내가 케이크 샀냐고 물어보려고 전화했지 싶어 냉큼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지금 빵집 가고 있어.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 가면 되지?” / “응, 엄마 근데 우리 오늘 미역국 먹지?” 사랑받는 막내의 맑고 투명한 음성이 뒷골을 때렸다. 그렇다고 막내에게 너희 셋 젖 먹이느라 평생 먹을 미역국 다 먹은 내게 지금 생일상 미역국을 끓여 진상하라는 것이냐고 따져 물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막내가 집에 돌아오기 15분 전, 자른 미역 한 움큼을 불려 다진 마늘과 후다닥 볶다가 물 붓고 다시 팩 한 개를 던져 넣고 끓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막내가 미역국 냄새가 난다며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를 발했다. ‘막내로 인해 나의 미역국 트라우마가 치유되었다’고 쓰면 고객 만족, 감동 충만의 결말일 테지만, 진실은 따로국밥이다. 막내가 행복해서 나도 행복하고, 여전히 나는 미역국이 별로다.

사진 : 여덟 살 어린이의 생일 즈음에는 만첩홍도가 만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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