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신혼 시절, 소파 없이 살았다. 소파를 놓을 공간이 없었으니까. 소파가 없으니 식탁 의자나 바닥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소파만큼 안락하지 않으니, 곧 침대에 눕게 되었다. 자려고 누운 것이 아닌데도 잠이 들었고, 점차 수면 시간이 길어졌다. 20대의 황금기를 잠으로 채우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1인용 암체어를 놓았다. 임신 8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유용했다. 배가 나오니 그 의자에 앉는 것도,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산을 오십여 일 앞두고 군 복무 중이던 남동생이 소천했다. 서울 엄마 집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신혼집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서울에서 아기를 낳고 엄마 집에 머물렀다. 알람 기능이 고장 난 시계처럼 울던 아기를 안고 불 꺼진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며 보낸 밤, 겨우 눈꺼풀이 내려온 아기와 함께 소파에 살짝 앉던 밤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 몸은 아기가 내는 작은 소리에 언제든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바뀐다는 것,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누울 수 있는 나날은 당분간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십여 년 전,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 아파트와 함께 소파도 처음 샀다. 십 년 이상 쓸 물건을 고르려니 시간이 꽤 걸렸다. 천소파의 먼지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죽 소파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다음은 인조 가죽과 천연 가죽의 갈림길이었다. 인조 가죽 핸드백의 처참한 최후를 떠올리며 천연 가죽 소파로 범위를 좁혔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선택 노동’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3인용 가죽 소파 중에서 100만원 미만인 제품은 다 찾아 본 것 같다. 최종 후보에 오른 소파는 국내 대형 가구 업체가 만든 50만원대의 인터넷 판매 전용 제품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 쇼핑이 대세지만,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은 물건을 산다는 것이 당시에는 영 꺼림직했다.
긴장과 기대감이 섞인 채 소파가 배송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컴퓨터 화면에서 본 연한 커피 우유 색 소파가 내 집 거실에 놓였다. 흡족했다. 전셋집이 아닌 내 집, 그 집 거실에 놓인 소파, 그 소파의 쿠션감은 적당했다. 십 년, 아니 이십 년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늑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 집 마련의 꿈을 도와준 은행은 피 같은 이자를 꼬박꼬박 받아갔다. 3년간 대출금 이자를 내다가 원금도 상환하게 되니 마음은 지치고 생활은 궁색해졌다. 결국 살림을 정리해 친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멀쩡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살처분했다. 소파의 수명은 애석하게도 5년이었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소파를 다시 샀다. 지인에게 얻어 온 소파를 만신창이로 만든 분, 그분의 발톱을 버텨낼 수 있는 소파를 골랐다. 딴에는 거금을 주고 산 소파라, 철제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쓰고 싶다. 물건의 수명은 내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배웠으니, 앉을 데가 있음을 감사하고 더는 바라지 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