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고약한 손맛이었다. 망치로 하얀 도자기 화분을 내리치자 후련함이 느껴졌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시원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릇을 던지는구나 싶었다. 그 망치질로 중년의 마마걸은 칠십 넘은 노모에게서 한 걸음 떨어질 수 있었다.
엄마는 식물 키우기를 즐기신다. 음식을 만드는 일로 식당 주방에서 반평생을 보낸 엄마는 은퇴 후 본격적으로 식물에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셨다. 오감이 발달한 엄마의 손끝에서 식물들은 성실하게 자라났다. 선한 오지랖의 기운이 늘 충만한 엄마는, 당신께서 경험한 것을 주변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시니, 엄마가 키우던 화분 중 몇 개가 내 집 베란다에 놓이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식물을 잘 죽인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데도 여차하면 집 안 식물의 사형 집행인이 된다. 명확한 이유가 있다. 나의 기운을 싹싹 긁어가는 자식 셋, 그들에게 시달리느라 식물 아니라 보물에도 눈길 한 번 줄 새가 없다. 목말라 죽어가는 식물을 보면 미안하다. 별 수 없으니 잘 가라고, 지금은 내 코가 석 자라고, 명복을 빌었다.
엄마는 내게 삼 일에 한 번 물 주라고 하시고, 나는 네, 하고 대답을 한다. 엄마는 다른 말도 하신다. 설거지 하고 나면 나무 젓가락 썩지 않게 얼른 물기 닦아 정리해라. 빨래 널 때 먼지 날리지 않게 당기고 밟아서 널어라. 남편 출근할 때 손에 음식물 쓰레기 들려보내지 마라. 남편이 구두 매일 바꿔 신을 수 있게 현관에 놓아줘라. 허리 좀 펴고 걸어라. 이마 주름 생기니 인상 좀 쓰지 마라. 발 뒤꿈치 각질 안 생기게 관리 좀 해라. 네. 네. 네. 네. 네. 네. 네.
아버지가 부재중인 집에서 맏딸로 자란 나는, 홀로 생계를 책임진 엄마의 힘이요 자랑이었다. 엄마 말씀 잘 듣고 공부도 꽤 하는 착한 딸이 되려고 애를 썼다. 너무 애를 쓴 게 탈이었다. 엄마의 각종 조언은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으니, 엄마는 계속 지혜로운 말씀을 투척하셨다. 싫다고, 이제 그만 하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 말을 꺼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지켜본 세월 만큼 내 입술은 무거웠다. 나는 마흔을 넘기고서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우울증이 깊어졌던 어느 날, 엄마가 베란다에 놓고 간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금이 간 부분을 테이프로 발라놓은 그 화분을 들고 엄마가 집에 왔을 때 말했어야 했다. “엄마, 금 간 화분까지 집에 놓고 싶지 않아.” 라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대신 내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화분에 금이 갔네?” “어. 근데 돌려놓으면 안 보여. 괜찮아. 잊지 말고 물 줘라.”
약자에 대한 사랑과 정의감을 가진 엄마. 생물학적으로 나의 엄마라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사랑과 정의감이 배인 당신의 행동만으로 충분히 내 존경을 받고도 남는 김 권사님이지만, 그런 분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화분을 깨면서 깨쳤다. 엄마와 나 사이에 그 거리가 얼추 자리 잡기까지 3년이 걸렸다. 최근, 이사한 집의 볕이 좋아 오크라를 키우면 좋겠다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화분 두 개만 놓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베란다에는 네 개의 화분이 놓여 있었다. “엄마, 오크라 화분 두 개만 놓겠다고 말했는데, 네 개나 놓았네. 두 개 도로 가져가세요.” 엄마에게는 매몰차게 들렸겠지만, 식물도 살고 나도 살 방법은 그뿐이었다.
사진 : 식물을 안 죽일 방법을 찾았습니다. 요즘 '물꽂이'에 꽂혀서 뭐든 꽂아보게 되네요. '숨은 고양이 찾기'는 덤으로 내는 퀴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