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김치전과 김치밥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대한 사람의 귓가에 ‘1919년’을 속삭여 주면 자동 반사로 ‘3.1운동’이 튀어나온다. 국사 시간에 공부 좀 했던 이들은 거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보탤 수도 있다. 나도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는 처지지만, ‘1919년’의 자체 연관 검색어 1위는 유관순 열사가 아닌 이한옥 권사님이다.


나의 외할머니 고 이한옥 권사님은 1919년에 태어나 2007년 소천하셨다. 자상한 할머니는 아니셨다. 오히려 무서운 할머니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건 당신의 일관되게 일방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새벽 네다섯 시면 기침하시어 보료 위에 정좌, 한 시간 이상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셨는데, 식구들이 잠을 깨든 말든 개의치 않으셨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라는 부제가 붙은 <목사의 딸(박혜란 저, 아가페북스)>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서 묘사된 박윤선 목사님의 면면은 나의 외할머니와 상당히 겹쳐졌다. 그 세대 신앙의 위인들은 가족과 가까운 이들에게 나누어주었어야 할 관심이나 애정마저도 절대자를 위해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땐 그랬다.


외할머니 인생 말년에 찾아온 혈관성 치매는 당신의 태도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평안도 억양에 얹힌 카랑카랑한 음색은 한 톤 낮아졌다. 첫째를 낳아 키울 당시, 나는 외할머니댁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엄마가 외할머니 저녁을 챙겨 드리지 못할 때는 내게 순번이 돌아오곤 했다. 내키지 않는 스무 걸음을 걸어가서 밥을 차리면, 외할머니는 이제는 길게 하지 못하는 기도를, 식사 전에 짧게 하시고 수저를 드셨다.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놓은 반찬을 꺼내고 밥통의 밥을 공기에 담고, 국을 데워 대접에 뜨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의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단지, 종일 작은 집에 갇혀 말 못 하는 아이 뒤꽁무니 쫓아다니다 기진맥진해서, 그런 상태에서 어른 밥을 차리려니 짜증이 났던 것이다. 외할머니의 경제력에 기대서 살았던 나의 십 대는 기억 저편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새로운 육아 고난의 현실만 충만했다.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고 했던가,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몸과 마음이 방전되지 않은 날에는 좀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 큰 힘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음식이 김치전과 김치밥이었다. 냉장고를 뒤져 익은 김치와 파, 돼지고기만 확보할 수 있으면 차려낼 수 있는 이북 음식들이다. 김치전은 부침가루에 위의 세 가지 재료를 섞어 부쳐내면 되고, 김치밥은 쌀을 씻어 역시 세 가지 재료와 함께 압력솥에 앉히고 밥을 하면 된다. 김치밥은 양념간장과 곁들여 내야 하는데, 버터를 한 숟갈 넣고 비비면 더 고소하다. “할머니, 김치전 부쳤어요.”, 또는 “김치밥 했어요. 식사하세요.” 하면 부처님 미소를 띠고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해디 덕분에 맛있게 먹겠구나.” 공치사를 하시던 이한옥 권사님. 잘 먹었다는 인사가 별로 없는 내 집 식구들 때문인지, 오늘따라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저녁 메뉴는 김치밥으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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