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커피와 담배 그리고 술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빵에 커피를 곁들이면 더 좋다는 말이다. 의식주는 삶의 기본이다. 여기에 커피, 담배, 술 같은 기호품이 더해져야 삶에는 윤기가 돈다. “인체에 필요한 직접 영양소는 아니지만, 향미(香味)가 있어 기호를 만족시켜 주는 식품” 이 없다면, 삶은 팍팍하고 건조할 것이다.


여러 종류의 기호품 중에서 내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1번 기호품은 커피다. 지금은 나이를 먹은 덕분인지 여섯 시 무렵이면 눈이 번쩍 떠지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분 간격으로 알람이 네 번 울려도 눈을 뜨지 못했을 정도로 아침잠이 많았다. 그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활동을 시작하려면 카페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스턴트든 핸드 드립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단 한잔 마셔야 했다. 주부는 눈 떠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바로 근무가 시작되는 신묘막측한 직업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24시간 근무 체제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짧은 순간, 심호흡하며 ‘오늘도 무사히’를 기원한다.


담배는 어릴 때부터 ‘금기’의 대명사였다. 여성이 지붕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범죄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무근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청소년기에 학교에서는 모범생, 교회에서는 자매님이었으므로 담배에 대한 호기심이 싹을 틔울 수 없었다. 다 자라고 난 뒤, 엄마가 젊은 날 애연가였음을 ‘커밍아웃’ 하셨을 때, 뭔가 속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담배 냄새를 워낙 싫어하다 보니 성인의 대표 기호품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격렬하게 부대끼던 몇 년 전, 우연히 영화 <한나 아렌트>를 보았다.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악의 평범성”을 정리, 발표해 나가는 아렌트의 깊은 고뇌는 한나 아렌트가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으로 시각화된다. 그 장면을 보면서 꽤 간절히, 그리고 진심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담배를 피우면 마음의 답답이 연기로 바뀌어 사라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담배를 피워 본 적 없고, 죽을 때까지도 필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 속으로 담배를 즐겼다.


신앙심 깊은 ‘에브리데이 크리스천’까지는 못 되지만 ‘선데이 크리스천’이므로 나는 나름의 주도(酒道)가 있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인데, ‘주인 주’ 자(字) 주님보다 ‘술 주’ 자(字) 주님이 앞서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속상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셔서 위로를 받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누리겠다는 마음에서 정한 원칙이다. 내 힘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탈 없이 마치고 난 뒤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좋아한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도 그렇게 맥주를 마셨겠지요, 주님? 하고 혼자 건배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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