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는 날개옷을 입지 않으면 날 수 없었다. 슈퍼맨도 몸에 딱 붙는 파란 옷을 입고 망토를 펄럭이며 난다. 입은 사람에게 힘을 주는 옷이 있다. 슈트가 그렇다. 위아래 같은 천으로 만든 한 벌의 양복 상의와 하의를 합쳐 슈트라고 한다. 통칭 ‘정장’이라고도 부른다. 슈트는 개화기 이래로 한국 남성의 대표 의상으로 자리 잡았다. 재벌도 입고 조폭도 입는다. 여성도 슈트를 입었지만, 바지가 아닌 치마 정장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여성은 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는 편견을 깨고 “르 스모킹”을 발표했다. 고급 사교모임에서 남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눌 때 입던 옷에서 착안, 여성도 바지 정장을 입을 수 있게 해 준 이브 생 로랑에게 새삼 감사하다. “샤넬이 여자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이브 생 로랑은 권력을 주었다”는 이브 생 로랑의 파트너 베르제의 말처럼, 스모킹 슈트를 입으면 정체 모를 힘이 솟는다. 2016 칸 영화제 시상식장에서 스모킹 슈트를 입은 샤를리즈 테론에게서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우주의 기운’이 감돈다.
내 생애 첫 스모킹 슈트는 검은색이 아니었다. 검은색 슈트 한 벌만 있으면 격식 있는 자리들 - 나와 남의 졸업식, 남의 결혼식, 남의 부모님 장례식 - 에 무난하게 참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어디서든 약간 튀는 것을 즐기는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대학 졸업할 즈음 신촌로터리의 그랜드백화점(현재의 그랜드 플라자)에 들렀다가 올리브그린색 슈트를 발견했다. 패션 잡지의 앞쪽 광고면을 늘 차지하는, 한국 여성복 정장의 대표적인 브랜드 제품이 반값 할인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동했다. 나는 그 정장을 입고 한껏 ‘폼’을 잡았다. 교생 실습, 면접, 설교와 강의, 행사 진행 등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옷을 입었다.
아이를 낳고 낳고 또 낳았다. 종일 집에 있으니 슈트를 입을 일이 없었다. 나의 경력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내 슈트는 조용히 의류 재활용함으로 들어갔다.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 빠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불을 박차고 나갔다. 때마침 친정엄마가 선물로 받은 옷이 좀 작다며 내게 넘겨주셨다. 어깨가 약간 솟은, 파워 숄더 디자인의 블랙 슈트였다. 내 돈 주고 절대 살 일 없는 버버리 슈트를 입고 십오 년 만에 다시 학생들 앞에 섰다. 일과 육아, 가사를 병행하느라 피곤해서 죽을 것 같지만,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지는 않다. ‘파워 숄더’ 슈트의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