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간장 게장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뜨거운 오후의 열기는 입맛을 앗아간다. 빼앗긴 입맛을 돌아오게 하려고 자극적인 음식, 이를테면 고춧가루인 척하는 캡사이신이나 불맛 소스를 뿌린 음식을 먹기도 한다. 이런 음식은 입을 마비시키고 눈물 콧물을 쉴 새 없이 뽑아낸다. 확실한 기분전환은 되지만 위장에서는 난리가 난다.


간장 게장은 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비싸다. 꽃게라는 재료 자체가 비싸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간장 게장은 간장 맛이 앞서지 않는다. 짜고 단 맛은 풍미 좋은 재료의 비린 맛을 가시게 하는 정도면 된다. 엄마가 식당을 하실 때, 퓨전 한정식 코스 요리의 마지막을 장식한 메뉴가 바로 이 간장 게장이었다. 먹기 좋게 전용 가위로 잘라 손님상에 올리면 게딱지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간장 게장을 먹고 싶어.” 여섯 시간 넘는 수술을 받은 딸 아이 입에서 난데없는 게장 타령이 튀어나왔다. 나의 자식 중 딸 아이가 유난히 외할머니의 간장 게장을 좋아했다. 딸은 초등학교 5학년 봄방학에 미루고 미뤘던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고, 나는 그런 딸을 지켜보고 돌봐야 했다. 마취가 풀려 괴로워하는 딸을 달래는 데까지는 다른 엄마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세 번의 제왕절개 경험을 통해 몸을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변줄과 링거를 주렁주렁 단 딸의 등을 툭툭 쳐서 병원 복도를 걷게 하는 엄마에 대한 소문이 병실 복도를 돌아다니든 말든,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얼른 집에 가자. 가서 간장 게장을 먹자. 간장 게장의 덫에 걸린 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인생의 절반을 ‘요리인’으로 사신 엄마께 나는 많은 요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배웠다. 재료 밑 준비를 하면서 배우기도 했고 어깨 너머로 익히기도 했다. 그러나 간장 게장만큼은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우기 싫었다. 살아있는 게를 사서 손질하고 간장을 달이고 그 간장을 게에 붓고 중간중간 통에 넣은 게들의 위치를 바꿔주는 과정을 이미 봤기 때문이었다. 저 노력을 들여서 게장을 담그느니 그냥 한 마리 사 먹고 말지.


지난 딸아이 생일에 딸은 생일 케이크 대신 간장 게장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하아, 하루살이로 사는 내가 담글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일흔을 넘긴 엄마께 손녀딸 입에 넣어줄 간장 게장 담가 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시내 유명한 게장 맛집에서 한 마리 사면 되겠지 했다. 거금을 주고 달랑 게 한 마리를 사 왔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아직 맛이 덜 든 상태의 게장 맛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엄마의 간장 게장에서 익숙하게 맛보았던, 그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절묘한 맛 - ‘아스슥’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배워야 하는가?


“외골 내육 양목이 상천 전행 후행 소아리 팔족 대아리 이족 청장 아스슥 하는 동난지이 사오(겉은 뼈요 속은 고기, 두 눈은 하늘을 향하고, 앞으로 가고 뒤고 가고 작은 다리 여덟 큰 다리 둘, 간장맛이 아스슥한 동난지 사시오).” - 사설시조, <댁들에 동난지이> 중에서.


사진 : 게는 손질이 복잡하니 새우장에 도전해 볼까 합니다. 중국 회화의 거장, 치바이스의 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