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돈의 맛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돈을 벌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탕진잼’을 맛볼 수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나 로또 배당금, 혹은 길에서 주운 현금 가방을 털어 쓰는 재미를 누리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도 남을 만큼의 나이를 먹어버렸다.

전업주부로 지내는 동안, 나는 내 집의 주 소득원을 제공하는 남편, 그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식구 전체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녀들의 교육비를 지출해야 했다. 초능력자 주부님들은 주식, 부동산, 은행 상품을 섭렵해 재테크까지 하신다. 나에게는 그런 자질과 여력이 없었다. 일찌감치 주제 파악을 하고 ‘아껴야 잘 산다’ 나 실천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매월 일정액의 현금과 신용카드를 받아 쓰는 것이 속 편했다.

벌어온 돈을 쓰는 역할을 맡으면 만 원짜리 한 장도 나름대로 생각해서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조금 묘한 결벽증이 생겼다. 남편이 주는 돈으로는 ‘탕진잼’을 누리기가 어려웠다. 두 가지 사실 - 나는 내게 돈 가져다주는 사람의 노고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 남편도 가사와 육아의 지난한 날들을 잘 모른다는 것 - 이 겹치는 지점에서, 내 통장에 들어오는 돈과 내 지갑에 꽂힌 카드는 남의 돈이면서 동시에 남의 돈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돈이므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탕진하기가 어려웠다. ‘내 돈’은 실종되었고 돈 쓰는 재미도 함께 물 건너 갔다.

7년 만에 다시 출근하게 되니, 내 통장으로 ‘다른 돈’이 들어왔다. 학교에서 받는 강사료와 각종 문서 수발로 받는 수당이 조금씩 쌓였다. 가계에 보태봤자 별다른 티도 안 나는 금액이었지만, 속이 답답한 날 친구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재빠르게 카드를 먼저 내밀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티끌 모아봤자 티끌 된다는 개그맨 박명수의 말을 믿는다. 내 통장에 든 돈으로 여성 명품 가방의 대명사 ‘샤넬 클래식 캐비어 미듐’을 사느니 친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천 이백 번 마시련다. 앞으로 50년 동안 한 달에 두 번은 마실 수 있다. 그렇게 마시다 보면 천국에서 커피를 마실 날이 오겠지.

그래도 결혼식에 에코백 들고 갈 수는 없으니, 제대로 된 ‘빽’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여동생에게 빌릴까? 커피 열 잔 사기로 하고.

사진 : 여름엔 그저 에코백이 최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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