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주부는 식식대지 않는다 1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주의 : 심각하고 딱딱합니다)


저녁 해가 구름을 분홍빛으로 물들일 때, 내 두개골 안쪽 어딘가에서는 압력솥 추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곧 콧구멍이 확장되며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온다. 저녁 여섯 시 종이 땡 치는 순간 나는 ‘식식대는’ 주부로 변신한다. 그냥 주부도 아니고 ‘빨리빨리’의 사명을 받은 한국 주부답게 움직이려면 일 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얼른 먹고 학원 가야 한다는 첫째 아들, 두세 번을 불러도 방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 둘째 딸, ‘생방송 톡톡 보니 하니’를 보며 젓가락질을 하느라 자꾸 반찬을 흘리는 막내. 어떻게든 한 자리에 모아 저녁상을 차리고 나면 내 입맛은 온데 간데 없다.

주부 생활이 그렇지 뭐, 앞집 뒷집 윗집 아랫집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면 그러려니 하고 훌훌 털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지구에 사는데 ‘지지고 볶지’ 않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다면? 콧구멍에서 김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입에서 불을 뿜게 된다. 사람들이 괜히 북유럽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2년 전, 아누 파르타넨의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 북유럽 사회가 행복한 개인을 키우는 방법(원더박스)>를 읽었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견고한 가족주의의 터전에서 성장했기에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저자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개인이 강해질수록 가족은 더 가까워진다는 말을 수긍하려면 내 무의식에 뿌리박힌 가부장제와 모성 신화를 먼저 제거해야 했다.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닌 나라, 곧 천국은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비행기를 타면 열 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다니 허탈할 수밖에.

여자는 가정, 남자는 일이라는 성 역할 분업이 근대의 산물임을 지적한 연구는 이미 많이 축적되어 있다. 기무라 료코는 이러한 연구의 토대 위에서 <주부의 탄생(소명 출판)>에서 일본의 1920-30년대 대중화된 상업부인 잡지를 분석하였다. “주부는 근대가 되어 발달한 각종 직업을 겸업한다.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아마추어', 그것이 주부에게 요구된 모습이다. ‘전문가’ 수준의 생산물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 요구되었어도(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해도) 주부는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사랑의 노동(즉 무상노동)’을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158쪽).”

백 년 전 일본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꾸리지 못한 남성은 주관적 삶의 질뿐 아니라 공동체와 결속되는 정도도 낮아진다. 그만큼 자신을 희생하고 뒷받침해주는 여성의 존재가 남성에게 중요하고, 가족이라는 일차적 사회관계가 ‘관계자원’으로서 갖는 중요성이 남성에게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여성은 아내 역할이라는 부담이 공동체 참여를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한다. 결국 남성이 가장이고 여성이 집안 일을 책임지는 식의 전통적 가족주의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위축시키고 시민 문화 촉진의 저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 196쪽).

전업 주부로 행복한 나날을 살고 계시는 분들에게 감히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혹 나처럼 콧구멍에서 김이 나는 분들은 자신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사랑의 무상노동을 조금 줄이고 약간 더러운 집에서 사는 것이 어떨까. 애너밸 크랩은 <아내 가뭄(동양북스)>에서 ‘아내’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는데, 아내는 ‘끝내주게 좋은 직업적 자산’임을 각종 실증 자료를 뒷받침해 설명한 뒤 일침을 놓는다. “옛날에는 아내들이 대개 여자였다. 웃긴 것은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이다(위의 책, 31쪽.)” 저자는 여자들이 ‘아내가 없어서’ 낭패를 당하고, 그 낭패를 매일 놓치는 남자들의 상황도 그만큼 비극이라고 했다. 그렇다. 여자들만 패자라고 가정하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자들, 일터에 갇혀있는 남자들, 아버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들 모두를 구해야 한다.

“난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야.” 열세 살 딸은 벌써 계산기를 다 두드려 본 모양이다. 아마 내 콧김으로 뒤덮인 부엌에서 삼 시 세끼를 먹다가 도를 깨친 듯하다. 매릴린 옐롬은 <아내의 역사(책과 함께)>에서 고대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내의 자리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고찰하면서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어머니를 거울로 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아들과 딸들에게 어떤 형태의 결혼을 유산으로 물려줄 지 자문해야 한다(599쪽).” 유산으로 물려 줄 돈도 없을 것 같은데 이미 내 딸은 인류의 유산인 ‘결혼’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단다. 골든 타임은 지나가고 있는 것인가?

사진 : <접시꽃 당신(도종환)> 때문인지, '아내' 하면 이 꽃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