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상 없습니다

적어 두면 힘이 된다 - 둔필승총

by 박쥐마담

작년 초여름 건강 검진을 받았을 때 화들짝 놀랐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처진다. 남편의 회사 보험으로 매년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아왔다. 별생각 없이 같은 검진 기관에서 검진을 해 왔는데 작년에는 남편이 다른 검진 기관을 예약해 주었다. 주위 사람들 말이 여기가 좀 더 꼼꼼하게 봐준다고 하더라는 남편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검진을 받았다. 그저 반나절 움직이면 뻗어버리는 저질 체력이라 맥아리가 없는 거지, 근력 운동 외에는 답이 없는 줄 알지만 알면 무엇하리, 체성분 분석기 손잡이를 잡고 있는 동안 짧게 구시렁거렸다.


검진 기관을 바꿨더니 검진 옵션도 조금 달랐다. 딱히 ‘땡기는’ 것이 없었지만 공짜인데 뭐라도 받아야지 싶어 유방 초음파를 골랐다. 유방 엑스레이 검사는 검진 패키지에 기본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특별히 아픈 곳도 없는데 CT나 MRI를 셀카 찍듯 찍을 수는 없었다. 컴컴한 검진실의 정적이 1분 정도 지났을까, 의사는 내가 들여다보지 못하는 가슴에서 빛나는 작은 혹과 결절을 찾아냈다. 통상 의료인에게 기대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아닌, 놀이터 모래밭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발견한 아이의 목소리처럼 한 톤 올라간 의사의 어조 때문에 내 불안감은 순식간에 증폭되었다.


집에 돌아와 이전 건강 검진 기록을 뒤졌다. 팔 년 전,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한번 받았던 기록이 있었다. 그때도 유방 초음파가 ‘옵션’이었던 기관에서 검진을 했다. 이상 소견이 없었으니 그 이후로는 유방 엑스레이 검사만 받아왔다. 나처럼 지방 조직이 적고 실질 조직 비율이 51%를 넘는 치밀유방의 경우 엑스레이 검사만으로는 암 조직을 감별할 수 없어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치밀유방은 아시아 여성에게 흔하고, 내 나이 또래 한국 여성들은 70% 이상 치밀유방이니 기본 검진에 유방 초음파를 넣어주면 좀 좋을까마는, 그런 거국적인 고민을 하기 전에 내 가슴에 흩뿌려진 혹과 결절에 대한 대책부터 세워야 했다. 대학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 이후 육 개월에 한 번씩 추가 검사를 받고, 혹과 결절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또 육 개월을 보내고 같은 과정을 되풀이했다. 이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면, 그 봄에도 내 혹과 결절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다시 일상적인 건강검진 사이클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작년 초여름 검진에 데어, 올해 건강 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지난주에 받았다. 십 년 이상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 한 해 정도는 건너뛰어도 되겠지 싶어 작년 초여름 검진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뺐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최근 식사량을 줄였는데도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더부룩한 느낌이 들어 설마, 혹시, 만약을 되뇌다 건강 검진 예약을 했다. 검진 당일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제발 저를 이대로 놔두시면 착하게 살겠다’는 기도를 진심으로 했는데도 마음과 몸의 긴장이 풀리질 않았다. 내시경 검사가 끝난 뒤 어지럼증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여태까지 나를 지탱한 정신력의 힘으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상 없습니다.” 의사가 보여준 화면의 분홍빛 위는 곱고 예뻤다. 매일 커피를 마시고, 화가 많이 나는 날은 떡볶이를 먹고, 오늘은 내일보다 더 착하게 살아야지.


이전 08화8. 니 결점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