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일등 공신
오후 3시, 핸드 드립으로 내린 과테말라 안티구아 원두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과테말라 안티구아는 스모크 커피의 대명사로 살짝 탄 느낌을 주는 향이 매력적이다. 커피를 마시며 쓴 글에서는 커피 향이 날까?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라고 호기롭게 외치고 싶지만, 정작 악마는 내 영혼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이미 안다. 시대의 선생, 민족의 선구자, 난세의 영웅과 거리가 먼 나 같은 소시민의 영혼을 사 봤자 쓸 데가 없으니까.
나는 저혈압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힘든 편인데,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뒤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눈앞이 희뿌연 아침, 커피 한 잔만 제대로 마시면 제정신이 들었다. 커피의 힘으로 공부를 마쳤고, 밥벌이를 했고, 자식 셋을 키웠다. 커피는 나에게 구원이자 축복이었다. 글을 쓸 때도 커피의 인도를 받는다. 커피는 나를 글자의 세계로 들여보내는 수문장과 같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글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카페인의 각성 없이 생각에 펌프질을 하고 안산 선수로 빙의해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2021년 한 해 동안 수업이 없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에는 동네 카페 <**동 콩집>으로 출근을 했다. <**동 콩집>은 우리 동네에 자리를 잡은 지 20년이 넘은 카페다. 이 카페 저 카페를 전전하다 이곳에 출근하기로 마음먹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동 콩집>은 평일 아침 8시 30분이면 문을 연다. 부지런을 떨면 막내가 학교에 가는 시간에 맞춰 나도 같이 집을 나설 수 있다. 그 시간에는 내가 유일한 손님이라 여기가 카페인지 내 개인 작업실인지 헛갈릴 정도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 것도 마음에 든다. 길가에 있는 카페라 유리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남서향인 우리 집 거실보다 훨씬 밝다). 물론, 커피도 맛이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사장님이 나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동 콩집>이 아닌 다른 동네 카페의 우수 고객인데, 그 카페에서는 글을 못 쓴다. 사장님이랑 너무 친해서 수다만 떨고 올 때가 열에 아홉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동 커피> 쿠폰을 출근부로 삼아 도장을 팡팡 찍었다.
막내가 코로나19 능동 감시자가 되어 당분간 카페에 올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사장님이 내려주신 라테를 마지막으로 마시고 과테말라 안티구아를 사 왔다. 집에서 글을 쓰려면 커피를 두 배로 마실 수밖에 없다. 진하게 내린 커피를 들고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못 본 척하고 돌아서서 머리카락과 먼지가 쌓인 마루를 살살 지나 침대 옆에 놓인 접이식 책상에 무사히 앉으면 절반은 성공이다. 방문을 벌컥 열고 "엄마, 배고파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