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부캐
아픈 몸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는 뚜렷한 ‘본캐'가 없이 자잘한 ‘부캐’로 산다. 몇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지만 인지도가 있는 작가는 아니다(실례지만, 저를 아시나요?). 7년 전부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만 출강하는 시간강사 신분으로 일한다. 세 자녀를 돌보고 살림도 하니 가사+육아 노동자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올망졸망한 부캐들로 채워진 인생에 그런대로 만족하며 산다. 그런데 1년에 두어 번은 제대로 서글퍼진다.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정산한 이메일을 받을 때다. 2020년에 첫 책을 낸 뒤로 매년 책을 냈지만 책을 팔아 번 돈은 시간강사 강의료와 큰 차이가 없다. 이번 생에 전업 작가로 사는 건 이룰 수 없는 꿈인가. 확실한 본캐를 확보한 작가들을 슬쩍슬쩍 곁눈질하다 보면 슬그머니 질투가 난다. 저 사람들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지나온 시간을 허투루 써서 그런가 싶어서 과거로 고개를 돌리면 인생의 통과의례들이 떠오른다. 남들처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십여 년을 보내고 졸업을 했다. 20대에는 의욕이 활화산처럼 폭발했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서 불안하기도 했다.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고 누구와 결혼할지 겨우 결정했더니 30대에는 20대에 내린 결정을 감당하느라 에너지를 몇 배로 써야 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동안에 시간이 뭉텅이로 흘렀다. 40대에는 육아로 잃어버린 경력을 되살리느라 고군분투했다. 아아, 잡다하게 살았지만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구나.
만약에 열정의 불꽃을 더 태웠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콘크리트에 찍힌 신발 자국처럼 뚜렷한 족적은 남겼을지 몰라도 육신은 재가 되어서 흩어졌을 거다. 40대의 끝자락에서 갱년기가 어서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데 족적은 무슨… 남의 떡에 침 흘리지 말고 그냥저냥 순리대로 살자고 나를 달랜다. 특별히 아픈 데가 없이 조용히 늙어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나이로 진입하고 있으니까.
2022년 11월 26일에 암 진단을 받았다. 난데없이 암 환자라는 부캐가 등판에 철썩 붙었다. 이 새로운 부캐는 중량이 묵직했다. 나의 소소한 부캐들을 모두 한데 합쳐서 양팔 저울의 다른 쪽 접시에 올려도 균형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암은 나를 낯선 문 앞에 데려다 놓았다. 그 문 너머에 미지의 세계가 있었지만 냉큼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문고리를 꽉 쥐고 필사적으로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은 자동문이었다. 입장과 동시에 무빙워크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무빙워크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낯선 것은 두려움을 유발한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낯설어서 두려움을 느끼는 줄로만 알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중증질환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당연히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암에는 다른 중증질환에는 없는, 짙은 터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 그늘은 두려움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지금처럼 볼거리가 다양하지 않았던 1990~2000년대는 TV가 말 그대로 ‘안방극장’이었고, 시청률 60%의 벽을 너끈히 넘는 <첫사랑>,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가 국민의 공통 정서를 형성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들 중에는 등장인물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때 혈액암의 일종인 급성 백혈병, 췌장암, 뇌종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잦았다. <가을동화>의 여주인공 송혜교가 백혈병으로 죽어갈 때 TV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서, 암에 대한 공포심의 싹이 발아한 건 그즈음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암에 대한 혐오 표현들은 그 씨앗의 열매일 테고.
나는 암이라는 질병으로 겪는 고통보다 암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눌렸다. 내 친척과 친구, 지인들이 암을 겪은 것처럼 나도 암에 걸렸을 뿐인데 말이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23명당 1명이 암 유병자이다. 내 친척 2명, 친구 5명, 지인 16명이 암을 경험했다. 이런, 칼같이 23명이다. 23명 중에 2명은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건너갔지만 나머지 21명은 오늘도 <짱구개미송>을 노동요로 깔고 생의 수레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암보다 더 무서운 건 목구멍이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암을 경험하고 있지만 암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사회적, 재정적인 어려움을 입 밖에 내기가 쉽지 않다. 암 환자에게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인 지지는 치료제만큼 절실한데도 그렇다. 건강은 소중한 것이지만 건강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 우리에게는 건강할 권리도 있지만 아플 권리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어서 건강을 회복하라는 말은 분명히 덕담이지만 건강하기 어려운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암을 극복하고 암과 맞서 싸운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승리의 찬가에 가려진 이야기들도 엄연히 제 몫이 있다. 우리 사회가 암과 질병에 관한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려면 당사자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참에 나의 볼품없는 용기라도 보태볼 셈이다.
친애하는 암 환우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들, 그리고 난데없이 암과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1년 동안 암 경험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고통의 결은 각기 다르기에 내가 겪은 아픔으로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 글이 당신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줄 효자손이 되기를 기원한다. 오, 제법 마음에 드는 부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