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잘 받지 않는 편이다. 스마트폰 주소록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의 발신자들은 대부분 생면부지의 남인데 천연덕스럽게 친한 척을 한다.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상품을 사라고 권유를 하거나 원치 않는 정보를 주겠다고 달려드니 아예 전화를 안 받는 게 속이 편하다.
아직 젊다고 하기엔 주름살과 흰머리가 아우성을 치고 늙었다고 하기엔 경로당을 드나드는 할머니들께 등짝을 맞을 게 뻔한, 40대 후반의 일반인에게 놓치면 평생 후회할 연락 같은 게 올 리가 없다. 보이스 피싱이 점점 진화하는데 생활비 통장에 들어 있는 몇백만 원이라도 털리지 않으려면 모르는 번호는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 편이 낫다. 나와 꼭 연락해야만 하는 사람이 전화를 건다면 나의 무응답에 굴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봉화를 올리고 비둘기를 날리지는 않더라도 다시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낼 정도의 성의는 보이지 않을까?
2022년 11월 9일은 수요일이었다. 딸과 미술 전시회에 갔고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었다. 오후에는 평소처럼 잡다한 일을 처리하느라 동네를 쏘다녔다. 집 앞 로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스마트폰의 진동벨이 울렸다. 주소록에 없는 번호였다. 하지만 완전히 모르는 번호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숫자의 조합이었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3초쯤 고민하다가 액정의 초록색 버튼을 터치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나는 전화기 너머의 어떤 여자에게 아주 단단히 야단을 맞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대놓고 언성을 높였다. 세 번이나 전화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았냐고, 거의 화를 냈다. ‘제가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아서요…’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기세에 눌려서 찍소리도 못했다. 그녀는 내가 ‘왜’ 전화를 안 받았는지 묻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왜’는 할 일을 제대로 안 했을 때 듣는 ‘왜’, ‘숙제 왜 안 했어?’, ‘쓰레기 왜 안 버렸어?’의 ‘왜’니까. 그녀는 ‘왜’로 내 입을 막아버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3개월 전에 했던 건강검진 중에서 유방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결과가 좋지 않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초음파 검사를 했던 선생님이 작년과 별다른 차이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걸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그 선생님께 꼼꼼하게 봐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오기까지 했는데… 내가 주섬주섬 설명해도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상대방이 뭐라고 하든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배어 있었다. 고객 응대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듯한 기세였다. 내 반응이 미적지근해서였을까, 그녀는 확실하게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암일 수도 있으니까 빨리 검사를 받으세욧!” 그녀가 나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었던 말은 나로서는 간절히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얼떨떨하게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집에 돌아와 서랍을 뒤졌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찾아 한 줄 한 줄 읽었다. 유방 초음파 결과는 초음파 검사를 했던 선생님의 말씀처럼 별다를 게 없었다.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라는 소견뿐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여기 어디에 암일 수도 있다는 말이 있나. 검진 센터에 전화해서 나를 닦달한 직원을 찾아내야겠다고, 별것도 아닌 일로 나의 안온한 일상을 뒤흔든 그녀에게 대거리를 하리라 식식거렸다. 그런데 유방 촬영 결과를 읽다가 멈칫했다.
판독 소견 및 병변 위치 : 4 미세 석회화(C0), 우 1상외측
판정 : 4 판정유보
권고 : 유방촬영 검사상 미세 석회화가 관찰됩니다. 미세 석회화는 그 분포와 모양에 따라 유방암과의 관련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유방 전문병원을 방문하시어 진료 상담 후 유방 확대촬영 등 추가 검사를 받으실 것을 권합니다.
3개월 전에 결과지를 받았을 때는 이 권고에서 ‘유방암과의 관련’이라는 어구를 보지 못했다. 분명히 꼼꼼히 읽었을 텐데, 그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유방암’보다 ‘있을 수 있으므로’가 더 크게 보였던 거다. 있을 수 있다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초음파 검사를 했던 선생님의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암의 공포를 휘발시켰나 보다. 듣고 싶었던 말을 들어서 안심했으니 골치 아픈 글자들은 보아도 못 본 척, 눈에 뜨이지 않게 기억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결과지에 적힌 문장들은 내가 내 몸을 객관적으로 대하기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럴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니다. 이 검사 결과지에는 오류가 있었다. ‘권고’, ‘권합니다’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권고에는 점잖고 차분하고 정중한 이미지가 묻어 있다. 담배를 끊으라는 의사의 권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구속력이 없지 않은가. 전화기 너머에서 검사를 종용했던 그녀는 나에게 권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냅다 언성을 높였고 덕분에 나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났다. 검사 결과지에는 ‘권고’보다 더 강력한 단어가 필요하다. 그게 어렵다면 권고에 빨간색으로 밑줄을 긋고 이 권고는 ‘권고사직’에 쓰이는 권고라고, 글자 크기 60으로 써 줘야 한다.
내게 집요하게 전화했던 그녀는 오늘도 전화기를 붙잡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이들이 정신을 차리도록 애를 쓰고 있겠지. 그녀의 기세가 꺾이지 않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