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끼는 기쁨

by 박쥐마담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배우자 건강검진 패키지를 제공한다. 그 패키지로 거의 매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주로 A 검진 센터를 이용했는데, 유방 촬영과 초음파 검사도 그곳에서 처음 했다. 유방 촬영은 유방을 압박해서 촬영하므로 통증이 따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암 검진 항목에 유방촬영이 포함되어 있다. 40세 이상 여성이면 2년에 한 번은 이 통증을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의 통증인지는 검사해 본 사람만 안다. 두 손으로 자기 유방을 인정사정없이 꽉 누른 것보다 더 아프다. 몇 초니까 참을 만했다는 사람부터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는 사람까지 반응이 다양하다. 내 유방은 원래 작았지만 아이를 셋 낳고 수유를 하는 과정에서 더 작아져서, 과연 유방의 탈만 쓴 유방도 촬영이 될까 싶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방사선사는 나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유방을 잡아당기고 눌러서 촬영을 척척 해 냈다. 그녀는 세상의 그 어떤 유방도 사정없이 찌부러트릴 수 있는 능력자였다.


유방 초음파 검사는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었다. A 검진 센터에서 제공하는 패키지에는 초음파 검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검사를 하려면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했다.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굳이 돈을 더 내면서까지 초음파 검사를 할 필요가 있나? 검진 결과지에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내 유방은 ‘중등도 치밀형 유방’이기 때문이란다. 치밀한 계획, 치밀한 성격은 들어봤어도 치밀한 유방이라니, 어리둥절했다.


모유를 분비하는 유선 조직의 밀도가 높은 유방을 치밀유방이라고 한다. 유선이 치밀하고 빽빽하다는 건데, 이런 유방을 촬영하면 엑스선이 유선을 투과하지 못해 사진이 하얗게 나온다. 만약 유방에 혹이나 양성 조직, 암이 있더라도 하얀 유선 조직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것들은 유방 초음파 검사로 잘 볼 수 있다. 그래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 두 검사를 병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80% 이상이 치밀유방이고 나처럼 40대 중증도 치밀유방을 가진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생이 9.4배 높다는데, 유방 초음파도 국가가 비용을 감당해 줘야지! 화가 제대로 치밀어 오른다.


2018년 새해를 맞아 정신없이 지내다가 A 검진 센터 예약을 놓쳤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어서 B 검진 센터에서 검진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B 검진 센터에 빈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패키지를 살폈다. 유방 초음파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예! 나는 이런 식으로 돈을 아낄 때 너무 뿌듯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출산을 했고, 낳은 아이들을 키우려다 보니 집에 들어앉았기 때문에 나는 주로 돈을 버는 입장이 아니라 (남편이) 벌어온 돈을 쓰는 입장이다. 1만 원을 절약하면 기분이 좋고 3만 원이 굳으면 뿌듯하고 5만 원을 아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물론 이렇게 아껴 봤자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집도 못 산다. 절약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잠시 즐거울 뿐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만족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돈이 나갈 일은 언제든 생기니까, 아끼는 순간의 기쁨이라도 누리지 않으면 서글퍼서 못 산다.


B 검진 센터에서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는데 담당 선생님이 열띤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양쪽 유방 모두에 혹이 엄청 많다고 했다. 그녀는 암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암을 발견해 생중계를 하는 것처럼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검사실에 들어갔다가 공포감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살면서 처음으로 암이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소리를 내서 엉엉 울었다. 1주가 지난 뒤 이메일로 결과지를 받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암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전문의 상담을 권한다는 소견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뭐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거잖아?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국가 유방암 검진을 받는 40세 이상의 여성 1,000명 중 평균 14%인 140명 정도가 나처럼 추가 검사나 조치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렇지만 확인 검사 결과 실제 암으로 진단되는 경우는 0.2%인 약 2명이다. 나머지 138명은 실제 암이 없었음에도 위양성으로 인한 추가 검사를 받고 그에 따르는 심리적 고통도 겪는다. 건강검진이 만드는 그늘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 병원 유방센터의 양성 종양 클리닉에 진료를 예약했다. B 검진 센터에서 했던 것처럼 유방 촬영을 하고, 국소 확대 유방 촬영을 추가로 하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의사는 6개월 간격으로 추적 관찰을 하자고 했다. 검사비를 포함해 진료비가 20만 원 넘게 나왔다. 계절이 두 번 바뀔 때마다 꼬박꼬박 검사를 받았다. 한 번은 조직 검사를 하기로 했다가 취소한 적도 있었다. 조직 검사 준비를 다 하고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조직 검사까지 할 건 없다고, 지켜보면 된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2020년 봄, 대학 병원 유방센터에서 네 번째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지난 2년 동안 찍은 사진과 영상을 비교할 때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했다. 크게 걱정할 상황이 아니니 1년 뒤에 보자는 말에 기쁨보다 진료비를 아끼고픈 마음이 요동을 쳤다. 남편의 회사에서 제공하는 배우자 건강검진은 무료인데 대학 병원에서 매년 몇십 만원씩 생돈을 쓰려니 너무 아까웠다. “선생님, 제가 전에 다니던 건강검진 센터에서 1년마다 검진을 받는 걸로 추적 관찰을 해도 될까요?” 의사가 왜 그러시냐고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돈 때문이라고 대답하기에는 멋쩍으니까. 의사는 흔쾌하게 그러시라고 했다. 암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데다가 돈까지 굳어서 두 배로 기뻤다.


기쁨의 유통기한은 3년이었다. 나는 다시 1000명 중 2명의 후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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