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낡고 닳은 말이라도

by 박쥐마담

여동생과 남편, 그리고 몇몇 친구들에게 첫 번째 조직 검사 결과를 알렸다. 내게 분당의 W 병원을 추천해 준 L을 포함해 네 명의 친구가 있는 단톡방에도 소식을 전했다.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매달 7만 원씩 모으는 ‘비바 이딸리’ 멤버들은 하나같이 정신력이 국가대표 수준이다. 남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친구들이다. 뭐야, 너무 훌륭하잖아(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절절매는 편인 듯.)? 훌륭한 친구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아 모로 가도 이탈리아만 가면 된다.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하자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L은 단톡방에서 내가 병원에 가기 전에도, 병원에 다녀오고 난 뒤에도 (자신과 내가 단계가 똑같으니) 별일 없을 거라고 수미상관으로 말했다. 별일 없을 거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말할 때 전문적인 지식이나 피땀 어린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요지경이고 삶에는 별일이 일어난다. 사건과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몰래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튀어나온다. 잠시 평화로울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한 인생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 꼴 저 꼴에 온갖 꼴까지 볼 수밖에 없으므로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별일 없을 거라는 말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별일 없을 거라고 말하는 건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걱정을 토로한 사람의 어려움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말과 함께 관심도 탁 털어 버리는 경우다(에이, 별일 아닐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 말한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내 입을 때리고 싶다. 내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듣지 않아도 될 말이니까. 또 다른 하나는 별일이 있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별일이 닥칠까 봐 걱정하는 사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말하는 경우다. 하지만 그 진심이 진하게 드러나면(제발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역으로 잠재된 별일의 가능성이 부각될 수 있다. 왕궁 안의 싯다르타로 살지 않는 한, 걱정의 당사자도 이 세상에 별일의 진공 상태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L이 가벼우면서도 무심한 듯하게 별일 없을 거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L의 말을 마음에 담았다. 성냥팔이 소녀가 몇 초 만에 꺼지는 성냥이라도 계속 켜서 온기를 이어가듯 걱정이 될 때마다 L에게 들은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친구 P는 “미리 하는 걱정 금지”라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별일 없을 거라는 말과 비슷하다. 상대방이 과도하게 걱정하다가 괴로움에 몸서리칠까 염려하는 말이므로 듣는 이를 위안하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 걱정하지 말자...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에 자꾸 토를 달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걱정을 안 할 수 있어? 심호흡을 하면서 명상이라도 해야 하나? 걱정은 내 뜻과 상관없이 안개처럼 마음에 스며든다. 저리 꺼지라고 윽박질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겁이 많고 대범하지 못하다. 용감무쌍해지고 싶지만 잘 안되어서 차선으로 용감한 척을 한다.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비관적인 생각도 빼먹지 않는 편이다.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가 판이 홀라당 뒤집히면 낙차가 크다.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최소한의 걱정을 한다. 그러면 오히려 안심이 된다. 반면에 P는 나와 달리 겁이 별로 없고 대범하다. P의 최고 장점은 생각을, 특히 걱정을 과도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P의 그런 성격이 부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P처럼 될 수 없다. 나를 생각하는 P의 마음은 감사히 받되 나는 내 방식대로 깨작깨작 걱정하기로 했다. 단, 걱정되는 문제에 대해 알면 알수록 걱정의 밀도와 범위가 늘어날 것 같아서 두 번째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유방암에 대한 검색과 탐구를 보류하기로 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에게 나는 뭐라고 말했더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친구에게 별일이 없었으면, 너무 멀리까지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도 남들처럼 별일 없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으니 무슨 말이든 했으리라. 친구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내 역지사지의 역량은 딱 거기까지였다.


몇 년 전에 지인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라니, 게다가 위중하다니 안타까웠다. 나는 그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일로 알게 되었고 얼굴은 딱 한 번 봤을 뿐이었다. ‘아는 사이’ 정도의 관계였지만 그에게 닥친 상황이 너무 거대해 보였기에 어떤 식으로든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엽서를 보냈다. 우체국에서 파는 관제엽서에 글씨를 빼곡히 적었다. 첫 엽서를 보낼 때, 답장은 보내지 마시고 그냥 읽기만 하시라고 썼다. 카페 구석에서, 학교 교무실에서, 안방 책상에서 나는 그를 생각하며 엽서의 백면을 글씨로 채웠다. 초에 불을 켜고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엽서를 한 통씩 보냈다. 열 통의 엽서에 담은 수많은 문장들 중에 그를 제대로 위로한 문장이 있었을까? 엽서의 사본을 갖고 있지만 도저히 그 사본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듣는 사람이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순도 100%의 지지와 응원과 위로로 응축된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그런 말을 만들 수가 없다. 말은 아무 소용이 없더라, 그 어떤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는 말이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어로 연결되어 있으니, 낡고 닳은 말이라도 닦아서 조심스럽게 건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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