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줄을 서시오

by 박쥐마담

주말을 지내고 다시 W 병원에 조직 검사를 받으러 갔다. 처음 갔을 때만큼 불안하지 않았다. 병원도 의사도 검사도 낯설지 않았고, 의사가 암이라고 생각했던 혹이 암이 아니었으니 미세 석회도 그저 돌가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렸더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선생님, 지난주에 제 미세 석회가 모양이 좋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제 눈에는 그냥 점으로만 보였거든요. 모양이 좋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의사는 모니터에 작년에 B 건강검진 센터에서 찍었던 사진과 이번에 찍은 사진을 나란히 띄웠다. 같은 자리에 있는 하얀 점들의 개수가 늘어난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군집을 이룬 게 모양이 좋지 않다는 뜻이에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음파로는 미세 석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세 석회화 진단을 받으면 조직을 더 넉넉히 뗄 수 있는 맘모톰 시술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 이 병원을 추천한 친구 L이 그런 경우다. ‘입체 정위 진공 보조 유방 생검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지러운 검사도 있다. 영문명을 따서 ‘스테레오탁틱(Sterotactic)’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유방을 눌러서 엑스선 촬영을 하면서 미세 석회의 위치를 찾아 맘모톰 바늘로 조직을 뗀다. 이 검사는 맘모톰처럼 비급여이고 비싸다. 게다가 힘들기까지 하다. 30여 분 동안 유방을 짓눌린 채 누워서 꼼짝을 못 한다니, 거의 고문 수준이다. 이런 검사 장비들이 개발되기 전에는 마취를 하고 절개를 해서 미세 석회화 부위를 절제해 조직을 얻었다고 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의사는 나의 경우 석회가 초음파상의 어떤 혹 위에 있는 걸로 짐작되므로 좀 더 굵은 바늘로 그 혹을 뽑아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내게 이 말만 했기 때문에 총생검으로 미세 석회화 조직을 얻는 경우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의 운은 거기까지였나 보다. 토요일 오전에 유방암으로 진단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정혜덕 님 안녕하세요? W 의원입니다. 조직검사 결과 유방암으로 진단됐습니다.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방암의 완치율은 매우 높습니다. 예약 후 내원하시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유방암 치료 전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동영상을 보내드리오니 내원하시기 전에 보시고, 치료받을 대학병원을 생각하고 오시면 예약 도와드리겠습니다.”


문자로 통보를 받으니 깔끔했다. 의사 앞에서 당황하는 것도, 그 당황한 표정을 수습하는 것도 별로니까. 감정과 에너지를 아껴서 좋았다.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문자에 첨부한 동영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동영상을 보면 암에 대한 생각이 좌뇌와 우뇌를 왔다 갔다 하며 무한 랠리로 이어질 것 같았다. 지금이야말로 P의 말처럼 ‘미리 하는 걱정 금지’를 실천할 순간이었다. 동시에 지지와 응원과 위로도 더 필요했다.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은 당사자에게만 놀랄 일이 아니다. 가족과 친구, 가까운 지인에게 암을 진단받았다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만큼은 아니어도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뭐?’, ‘헉’, ‘ㅜㅜ’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건 자연스럽다.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말과 표현이니까. 하지만 이런 말과 표현은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애써 다스린 감정이 출렁거렸다.


많이 놀랐겠다는 말은 내 감정에 공감하는 말이라서 괜찮았다. 이미 암을 경험한 친구가 자신이 진단받았던 날의 기억을 들려준 도 힘이 되었다. 출근했다가 잠시면 될 줄 알고 병원에 갔는데 진단을 받았고, 혼자 걸어서 사무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때의 일이 그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이 된 것처럼 나의 일도 그렇게 지나갈 거라고 말해 주어서 고마웠다. 다른 암 경험자 친구는 암은 우리에게 한 번 거쳐가는 거라고 했다. 빨리 발견하면 병원에 자주 가서 건강해진다는 말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수도 없이 들은,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별로였다. 객관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닌데도 속이 불편했다. 아직 내가 암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암 경험이 없는 사람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는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지. 난 암에 걸렸고 넌 안 걸렸으니 네가 진정 다행이지.’ 하는 말이 턱 밑에서 달랑거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배배 꼬인 사람이었나? 다행이라는 말을 소화하기가 어려워 속이 쓰린데 그 속 쓰림에 자괴감까지 따라붙어서 기분이 두 배로 나빴다.


하필 토요일 오전에 문자를 받을 건 뭐람. 미리 잡은 주말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저녁에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의 결혼식이, 일요일 점심에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예정대로 결혼식에 참석했고 친구들과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병원에서 보내준 동영상을 보지 않고 일요일 저녁까지 잘 버텼지만 더는 현실을 회피할 수 없었다.


동영상에는 유방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좋을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첫째, 진료를 보고 수술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둘째, 방사선 치료를 받을 경우에는 병원을 매일 가야 하니 거주지와의 거리를 고려할 것. 그 영상을 보니 굳이 여러 병원을 비교할 필요 없이 전에 다녔던 대학 병원을 가면 되겠다 싶었다. 과연 얼마나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그건 내일 W 병원에 가서 의논하면 되겠지. 그때, 같은 교회를 다니는 M님께 전화를 드려볼까 싶었다. M 님은 작년에 그 대학 병원 수간호사로 퇴직을 하셨고, 2년 전에 역시 그 대학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 병원 사정을 잘 아는 분이니 적절한 조언을 주시리라.


M 님은 무조건 내일 아침 9시에 대학 병원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잡으라고 하셨다. 어어, 저는 아직 W 병원 의사에게 검사 결과도 제대로 못 듣고 문자만 달랑 받았는데요? M 님은 그건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든 예약을 빨리하는 게 급선무라고 하셨다. W 병원에서 예약을 도와준다고 했는데요? M 님은 내가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 동안에도 무수한 환자들이 예약을 한다는 사실, 내 예약은 그만큼 밀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셨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줄을 서라니, 허준이라도 만나는 건가? 환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사가 허준이기를 바란다는 것을, 환자가 되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었다. 암의 세계는 줄을 서서 들어가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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