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중2님에게는 일곱 살 먹은 남동생이 있다. 중2님이 냉소적인 촌철살인의 강자라면 일곱 살 막내는 필로소피아 자체다. 중2님은 세상을 아시는 분이고 막내는 아직 세상을 모르는 분이므로, 막내가 질문하고 중2님이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출근하던 학교의 한 학기 강의와 성적 처리를 모두 마치고, 나는 꿈에 그리던 방학을 맞았다. 기쁨은 잠깐, 주부는 방학이 없으니, 어떻게든 이 더위에 불 앞에서 한 그릇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렇게 만들고 먹고 치우고 한숨 돌린 찰나, 막내가 말을 걸었다. “엄마, 우리 어린이집에 아기반(영아반)이 있는데, 거기 아기들 진짜 예뻐. 내 친구 OO이한테 아기 동생 있어서 보러 갔는데 정말 귀엽더라?” 일곱 살은 아기가 아니고 어린이라 힘주어 말하는 막내의 아기 찬양이 귀엽다 못해 우스웠다. 꼬마 철학자는 관찰에 질문을 보탰다. “엄마, 엄마 아기 낳을 수 있어?” “......(막내 아들아, 엄마가 아기를 셋이나 낳아서 이 고생을 하고 거기다 지금은 객식구인 고양이까지 들였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최대한 부드럽게 답해 주었다. “엄마 이제 늙어서 아기 못 낳아.” 막내는 매우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무념무상으로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형에게 물었다. “형아, 형아는 아기 낳을 수 있어?” 중2님은 답하셨다. “자식을 낳을 수는 있지. 그런데 그럼 인생 망하지.”
아들아, 내가 네 나이었을 때는, 공부하고 취직해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이 꿈이었단다. 나뿐 아니라 내 주위 또래들이 대부분 그러했단다. 자식을 낳으면 망한다는 네 말을 들으니, 삼십 년이 지난 사이에 세상은 뒤집히고 또 뒤집혔나 보다. 물론, 네 말은 ‘지금’ 자식을 낳으면 곤란하다는 뜻이지만, 크게 보면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니겠느냐. 현실을 겉도는 출산 육아 정책 덕분에 아기들이 태어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고, 상상력이 풍부한 나조차도 내 아들이 장차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낳아 키우는 그림을 그려 볼 수가 없구나. 그런데 여기서 잠깐, 우리 팩트 체크는 하고 가자. “아들, 몽정한 적 있어?” 중2님은 주저 없이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그럼 지금 자식 낳을 수 없네. 어디서 일곱 살 동생한테 수작이냐?”
중2님의 차가운 시선과 일곱 살의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가지기는 어렵다. 그 어려운 걸 해낼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난세에는 영웅이 난다던데, 그 영웅은 언제 오는 것인가. 방학을 맞아 미처 못 본, 영웅들이 단체 출동하는 영화나 한 편 감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