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힘들다. 생계를 부양하는 남자 어른의 어깨는 무겁고, 밥하는 여자 어른의 손목은 찌릿하다. 요즘은 거리를 걸을 때면 출입문이 고장이 난 사우나 안에 갇힌 기분이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작년 봄부터 나의 재취업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 자신을 비롯해 가족들도 한동안 적응기를 거쳐야 했다. 일년 반이 지난 지금도 모든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삶은 갈등의 연속이고 완전한 해결은 죽음 전까지 불가능하니, 하루씩만 풀어갈 뿐이다.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섭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내 신조다. 그 섭리로 선발된 구원투수가 내 집 중2님일 줄은 몰랐다(야구를 잘 몰라서 이 상황을 야구로 비유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고양이가 모래 화장실에 용변을 보지 않고 딸 침대에 실례를 해 버렸다. 늦게 귀가한 남편, 회사에서 기운을 빼앗겨 축축한 발 매트 같은 상태로 돌아온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수호자인 내 집 중2님은 그런 남편을 달랬다.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아빠 나도 지금 고양이가 실수해서 엄청 황당하고 짜증이 나는데, 화를 내진 않잖아. 화 좀 그만 내." 중2님이 네 번 정도 같은 말을 반복할 때까지 남편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내 집 중2님이 보낸 톡을 받았다. 아빠에게 보내는 장문의 메시지였다. 맞춤법 검사를 해 달라는 부탁이 붙어있었다. 그 메시지 앞부분에는 중2님이 그날 밤 느낀 감정이 여과 없이 표현되어 있었다. 내가 중2일 때 부모에게 결코 해 본 적 없는 말들, 꿈에서도 해 본 적 없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맞춤법도 틀려 가면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뒤 중2님은 힘든 어른을 토닥여 주었다.
"과거에 있던 일은 지금 중요하지 않고 지금이 중요해. 아빠, 내가 아빠를 신뢰할 수 있게 아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 난 아빠를 믿으니까."
그날 밤, 중2님은 사랑할 줄 아는 남자로 거듭났던 것이다. 5년 뒤면 중2님은 스물이 된다. 집을 떠나 그 사랑의 능력을 펼치기를. 물론, 그러기 전에 수학 문제집은 꾸준히 풀어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