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글렀네

by 박쥐마담

어렸을 적 초등생의 교양 체육 필수 과목은 고무줄과 공기놀이였다. 대근육과 소근육 발달이 모두 시원찮았던 나는 두 가지 신체 활동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개인전인 공기놀이는 완곡하게 거절하면 그만이었고, 단체전인 고무줄은 깍두기로 줄이나 몇 번 잡아주다가 자연스럽게 낙오하면 되었다. 문제는 잡기 놀이 ‘얼음땡’ 이었다. 여럿이 뛰어노는 판이 벌어져 얼음땡을 하게 되면, 나는 술래가 내게 다가오기 전에 미리 ‘얼음’을 외쳐 스스로 동면에 들어가기 바빴다. 내가 술래가 되면 벌어질 상황 -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뛰어다녀도 아무도 얼리지 못해 놀이가 끝날 때까지 헉헉댈 - 이 싫어서 스스로를 얼리겠다는 건데 왜 자꾸 해동을 시키는 건지. 애써 뛰어와 ‘땡’으로 내 얼음 방어막을 해제해 주는 친구들이 야속했다.


지난봄, 내 교실에서 자체 동면에 들어간 학생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만큼 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날아오는 공을 정신없이 피해 다니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었던, 나의 ‘피구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므로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고무줄과 공기, 얼음땡과 피구는 흘려보내면 그뿐이고, 대신 그 자리를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들로 채우면 되니까.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교실에서 그 혼자 ‘렛잇고’를 부른다 한들, 그의 취향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주 4회 출근하여 열여섯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집에 돌아와 자식 셋 밥을 해 먹이는 일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전쟁통에 짐 이고 애 업고 피난을 다닌 어르신들이 보시기엔 엄살을 떤다고 하시겠지만), ‘얼음’을 외치고 수건 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난 원래 기운이 없는 데다가 애를 셋이나 낳았으니 이럴 수밖에 없어, 이렇게 될 것이 뻔해서 재취업 안 하려고 했지,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저질 체력으로 만드신 걸까 등등 아무 소용 없는 넋두리를 한껏 늘어놓았다. 징징대는 나를 살살 달래준 몇몇 친구들의 “땡!”에 힘입어, 결국 지난달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내친김에 석빙고에 들어간 동면 학생도 꺼내리라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 집 중2님께 동면 학생을 해동시키겠다는 선생의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 학생 몇 학년이야?” “고2.” “글렀네.” “뭐라고?” “글렀다고. 고2라며. 그냥 냅둬.” 내 집 중2님께서는 틀린 말씀을 거의 안 하기로 유명하시다. 그러나 이번에는 틀리셨다. 한 번뿐인 생이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그에게도. 그러니 ‘글렀다’는 말은 관뚜껑 안쪽에나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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