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끝 Jan 13. 2021

나는 얼마나 쓸 만한 인간인가

배우 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을 읽으면서 뒤늦은 자아성찰을 하게 되었다

<쓸 만한 인간>이라는 책을 통하여 인간 박정민, 그리고 배우 박정민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파수꾼>이었다. '베키'를 찰떡처럼 연기하던 그를 본 뒤, 꾸준히 그의 행보를 눈여겨봐 왔다. <들개>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변산> <시동>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비슷한 또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극 중 인물을 뼛속까지 체화하여 연기를 하는 덕분에, 지금은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래서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을 알고 싶어, 그간 쓴 글을 모아 정리했다는 책을 골랐다. 그도 글 쓰는 걸 즐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이 더욱 반가웠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길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에 무거움을 내려두고, 전달에 충실하려 한 그의 문장이 잘도 와 닿아서다.  


그가 쓴 글을 읽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간다. 흔히 서른을 앞둔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 안고 있을 법한 고민들을 무겁지 않은 글로 전해주고 있어서다. 글에 담긴 그의 생각이 몸과 마음에 그대로 전해졌다. 특히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소중한 기회로 여겨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지금 그가 배우로서 널리 인정받게 된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하고 싶고,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어 다니던 학교를 관두고, 연기를 배우기 위한 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것도 여러 번의 도전 끝에. 어찌 보면, 당시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부담은 내려 두고, 오롯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주목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그를 보며,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간의 나를 오롯이 돌아봤다. 스스로는 '끝없이 도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거나 그럴 여지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멀리 한 건 아닌지. 그래서, 더 좋은 기회를 놓쳤던 건 아닌지를, 말이다. 그리하여 그간의 삶에서 '도전의 역사'를 복기해보았다. 난 스스로에게 얼마큼 '쓸 만한 인간'이었는지를, 되새겨보는 순간이다. 어떤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 위험부담을 안고서 도전을 했던 적이 있었는지, 스스로 그걸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했던 적이 있는지. 하나, 생각이 났다. 하나, 생각이 났다. 스스로 도전이라 생각하여 행동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던 아니었던 적이. 부끄러운 추억이다. 


<박하사탕>을 보고,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도 쓰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량이 부족한 나머지, 이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길을 포기하고 말았다. 당시 같은 꿈을 갖고서 함께 시나리오를 썼던 친구는, 대학에서도 영화학을 전공하고 그 이후로 꾸준히 독립영화를 내어 지금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했던 행동은 도전도 아니었다. 그저 영화라는 영역에 잠깐 발을 잠깐 걸쳐보려 했다가, 잘 될 자신이 없어서, 피한 것과 진배없다.

 

적어도 도전이라면, 몸이 아파 몸져눕지 않는 이상 끝까지 제대로 해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그 정도의 마음가짐은 있어야 '도전'이라는 두 글자를 부끄럽지 않게 붙일 수 있겠다 싶다. 실패의 역사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시나리오를 쓸 때처럼 좋아했던 영역인 글을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시나리오는 아닐 지라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하고 싶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글로써 파생할 수 있는 것에서 전부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타깝게도 나이를 먹어가며, 현실에 순응하여 살다 보니 '되지 않을 일'을 꺼리고, '될 일’만 하고 찾게 되는 사람이 되었지만, 예전과 같이 잠깐 발을 걸치려 하는 바보 같은 짓에 도전을 붙이는 행동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제대로 된 도전을 해야겠다. 그 도전의 끝은 나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낸 책을 내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지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