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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Jan 08. 2021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지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싶지 않아서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잔병치레를 하는 날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어젯밤부터 목이 칼칼하더니, 이따금씩 통증이 느껴져 인후통약을 사 먹었다. 고작 약에 의존해야만 하는 내가 나약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은 또 약이다. 몸이 자꾸 말썽을 부리는 건 역병으로 인하여 혼자 있는 시간이 늘다 보니 무얼 차려 먹기보다는, 남이 만들어준 음식을 혼자 먹는 날이 많아진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혼밥족'에 속한다. 반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배달의 민족'에 가득 들어차 있는 주문 내역과 리뷰 글이 이를 방증한다. 혼자 먹었는데도 얼마나 큰 만족감을 느꼈는지, 모든 후기 글에는 별 다섯 개가 찍혀 있다. 애당초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긴 하지만, 만들어 먹을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낀 셈이다. 
 
나는 그간 장을 보거나, 냉장고 있던 식재료를 갖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에 적잖은 흥미를 느낀 데다, 좋아하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어왔다. 특히 대학 재학 시절 때부터 자취생활을 해 왔던 터라 자취요리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잘 쓰지도 않던 식재료를 들이는 일도 수 차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혼자 있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그러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있는 상태의 몸을 이끌고 요리하는 일이 힘들어서도 있겠지만, 누구를 위하여 음식을 만드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컸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혼자 먹을 때가 아니고, 동생과 함께 먹는 순간을 좋아했다는 것을.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공들여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었을 때에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을 느꼈다는 것을.
 
어쨌든 시간이 흐를수록 배달음식으로 인하여 몸은 망가지고, 외로움은 쌓여만 가는데 아직까지 그걸 타개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나를 위해 성대한 만찬을 차려 먹거나, 운동을 더 열심히 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거나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텅 비어 있는 방 안에서, 불 하나 켜지 않은 채 텔레비전을 통하여 비치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적당한 조명과 볼륨이 3 정도로 맞추어진 작은 소리가 나는 상태에서 글을 쓰거나 또는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어쩔 때는 그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랄 때도 있다. 그 어두움과 정적이 좋아서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외로움이라는 구덩이에 빠진 나머지 헤어날 방법을 부단히 찾기도 한다. 좋아함과 외로움이 상충되는 어느 지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다. 물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지금 나의 상태가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결국에는 이러한 사이클을 반드시 벗어나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일종의 자기만족에 무게를 둔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나에게 외도가 있다면, 그게 바로 여행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코로나로 인하여 지금 당장은 요원한 일이지만. 여행할 땐 혼자여도 외롭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다. 그 순간이 마냥 즐거울 뿐이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무슨 재미로 지내요"라고. 이런 재미로 살고 있다. 그런데 남이 만들어준 음식을 끊기란 도무지 쉽지가 않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앱을 켜놓고서는,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순간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래도 조금 더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서 앱을 실행하는 횟수를 줄여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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