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가까워지는 과정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에 대한

by 푸른끝

살기 위하여 하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행위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을 또다시 깨닫게 되었다. 마음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귀찮거나 또는 버거워서, 시간이 걸려서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이 시대에, 그 다른 나머지 행위들은 분명 더 무겁게 여겨질 수도 있어서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 노동과 음식을 먹는 일, 잠을 자는 것, 숨을 쉬는 것 등의 필수요소를 빼고서는 어떠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 천지라는 걸 매번 절감한다.


하물며 좋아해서, 살기 위하여 한다는, 글을 쓰는 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주어지는 남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가능한 것이 되어 버린다. 실제로 좋아하는 것들을 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 그것은 일종의 취미가 되고 내가 가진 자원이나 시간,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전제가 되는, 그런 일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과는 다르게 명확한 의무성이나 목적성이 다소 결여된, 그런 행위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의무성과 목적성은 물론, 결과물을 반드시 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다 보니 느슨해지게 되고, 자유로워진다. 나는 이것이 자연스레 즐길 수 있는 원천이 된다고 여긴다.


제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하여도 그걸 끊임없이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업이 아니어서다. 좋아하는 것이어서 부단히 즐기려 하여도, 의무성과 목적성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즐기지 못하고 내팽개쳐지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럴 때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를 수차례 반문하기도 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의 시간을, 감정을, 자산을 투입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안 그러면 할 수 없다. 결국 무엇을 투입하여 행위하고, 결과물 또는 산출물이 나오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나는 무조건 즐기는 마음을 갖고 있어 행복해,라고 여기기보다는 내가 이만큼 쏟고 있어서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으며, 긴 호흡으로 '즐김'을 단순히 즐기는 일로 여기지 않고, 보다 솔직하게 접근하는 과정을 겪다 보면 무엇을 투입하든 간에 이것이 아니면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는 않겠구나,라고 깨닫는다. '살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라벨이 부착된 상자에 담겨 있지 않더라도, 결국은 살기 위하여 하게 되는 셈이다. 그걸 하는 것이 나였고, 나이고, 앞으로도 나일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즐기기 위하여 하는 것들도, 대개는 어려운 일이라고 확신하고, 오롯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정리하면,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진다.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에 대한,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