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덕분에 행복을 들이게 되었다
냉장고에 먹을거리가 없어 꽤 오랫동안 집밥다운 밥을 먹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배달앱을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게 싫을 때에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허다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퇴근 후에 지친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무얼 해 먹을 엄두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 식재료가 없기도 했고. 그리하여 지난 일요일에는 장을 봤다. 항상 마트에 가면, 의무적으로 구입하는 품목이 여러 가지가 있다. 사발면과 봉지라면, 저지방 우유, 만두, 참치, 햄과 같은 것들. 전형적인 자취생의 식단에 들어가는 것들이다. 그러다 우연히 김치 코너를 지나가는데,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김치 한 박스 덤으로 드릴 테니 얼른 싸게 가져가요"라고 말을 건넸다. 엄마가 보내주신 김치가 동이 날 때, 이따금씩 마트에서 김치를 사 먹은 적이 있다. 사실 그 날, 김치를 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똑같은 제품을 하나 더 준다기에 두 박스를 카트에 담아두었다.
어쨌든 지난 일요일도, 아주머니께서 한 박스를 더 준다기에 계획에도 없는 지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포기 김치여서 집에 와서 썰어놓은 뒤 소분하여 반찬통에 넣어두었다. 한 동안 김치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두 포기나 생겨버려서, 동생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분간 김치찌개를 시작으로 김치전, 김치찜, 김치볶음밥 등 김치 요리만 먹어야겠다고 웃으며 말하기까지 했다. 그럴 만한 것이, 그리 크지 않은 냉장고 냉장 칸에 김치 두 박스를 넣어두니 금세 가득 차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저녁도 통조림 햄을 넣은 김치찌개를 푸짐하게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김치를 산 다음 날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 집에 먹을 거 없지? 엄마가 김치 넉넉하게 만들어 보냈으니, 택배 받으면 냉장고에 잘 넣어두고, 밥 잘 챙겨 먹어"라고 말씀하셨다. 화들짝 놀랐다.
순간적으로 "엄마, 사실은 어제 김치 두 포기나 샀어"라고 말했다.(이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가 되었다.) 엄마는 택배를 보내기 전에 내게 먼저 물어보고,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아들, 미안해. 가뜩이나 냉장고 좁은데 보내준 김치 정리하느라 고생하겠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말했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 안 그래도 당분간 김치 많이 먹으려고 했는데, 더 잘 됐지.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사랑해요"라고. 최근에 김치가 없어, 밥 다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이틀 새 '김치 부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김치가 두둑이 쌓이게 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랄까. 당분간 김치 걱정 없이 밥을 챙겨 먹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간 냉장고에 김치가 없어 찬이 제대로 없이 지내다가도, 지금은 오히려 김치를 냉장고에 둘 공간이 없어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인생 속, 행복도 그런 걸까. 오늘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이렇게도 행복할 수 있는 걸까'라고 반문하게 되는 것. 예측이 쉽지 않은 것에서 오는 특성이, 고통과 괴로움을 주다가도, 또 어느 때에는 반전을 만든다. 그래서 예측 불가능한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라고 여긴다. 지난 글들을 복기하여 읽어 보아도 그런 것 같다. 오늘 하루는 엄청 힘들었던 나머지, 문장에서 무게와 어둠이 느껴지다가도, 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명의 기운이 담겨 있었구나,라고 깨닫는다. 그래서 나름대로 도출한 결론은 이렇다. 오늘 정말 행복했지만, 내일 큰 불행이 찾아올 수도 있으며, 오늘은 음지에서 살았지만, 내일은 복된 좋은 운수가 가득하기도 할 거라는 것.
내가 어찌할 도리가 있는 것이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 만큼 외부의 그 어떤 것들을 원망하거나, 불행하다고 여기지 말자고. 며칠 사이 김치를 매개로 하여 사랑을 듬뿍 받은 것처럼, 앞으로도 살아가며 생각지 못하였던 김치와 같은 행복을 주는 요소와 마음 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오늘, 많이 힘들었나요. 내일은 오늘의 일을 희미하게 만드는 걸 넘어, 그런 일이 있기는 했는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세상 가장 행복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을 힘들 게 만들었던 무엇이 있다면,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 말고 푹신한 잠자리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잠에 들면서, 내일을 기다려보아요. 곧 다가올 행복이, 오늘 당신을 무겁게 만든 것들을 자동으로 밀어낼 테니까요. 그러길 바라요. 분명 그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