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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May 11. 2021

안 사던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은 늘 자유니까

얼마 전부터 평소 안 사던 로또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열쇠 가게가 있는데, 평일 중 하루는 그곳에 들려 자동으로 5000원어치 구입하고 있다. 사실 그간 내 돈으로 로또를 구입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구입한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로부터 로또를 건네받았던 경험은 생생히 기억난다. 몇 년 전에 친구가 본인의 로또를 사면서, 나의 것도 함께 구입하여 선물로 건네준 적이 있었고, 팀장님께서는 신년을 맞아 복을 기원하며 팀원들에게 로또를 나눠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건네는 말은 비슷하였다. 친구의 경우는 "1등 당첨되면, 반땡하자"는 말을 하였고, 팀장님께서는 "우리 중에서 1등이 나오면, 팀원들끼리 나누어 가지는 겁니다"라고 웃으며 장난 섞인 말을 하였다. 결국 5등도 당첨되지 않아, 나눔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머릿속에 남게 되었던 듯하다. 그게 로또에 관한 기억의 전부이다.


그런데 안 사던 로또를 갑자기 구입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지난해 예상치 않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역병이 창궐하면서 우울한 하루를 보냈던 적이 있었고, 그 속에서도 내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여 왔지만 기대와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안 하던 걸 하고 싶었다. 대단하고 특별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쉽게 그리고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런 시각에서 로또는 새로운 경험임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사기 시작한 것이다. 복권 구입은 당첨을 바라는 마음보다 1등 당첨 번호가 나오는 순간까지 평소에 경험하기 쉽지 않은 기대감과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데다, 당첨번호 여섯 개가 일치하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관하여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크다. 그래서 나는 로또를 구입하는 것이, 설렘과 상상을 구입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매주 5000원이라는 금액을 지불하여 기대와 설렘을 새롭게 들이는 셈이다.


누군가는 로또를 구입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당첨 확률이 희박한 경우에 수에 돈을 쓰는 것이 바보처럼 보여질 수 있어서다. 나 역시 평생을 그렇게 생각하여 왔다. 다만 관점을 달리하면,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실 때에 형용하기 어려운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요행을 바라고 복권을 사는 행동 역시 행복을 느끼는 새로운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떠한 것에 집중하고 열정을 다하여 매진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에는 실망과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이번 주에 로또 1등 당첨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불운이나 좌절을 겪진 않으니까.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이라고 한다. 여섯 개 번호 가운데 절반을 맞히는 5등 확률도 2.24%에 불과하다. 따라서 1등 당첨 확률은 기적 중에서도 기적이다. 물론, 1등 당첨 번호를 아깝게 비껴가거나 2등에 당첨되면, 마음이나 기운이 꺾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런 일을 겪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


중요한 건 어떠한 매개를 통하여 내가 설레는 마음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경험하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일상을 보내며 요행을 바라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사회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학창 시절 입시의 경쟁을 겪어야만 하였고, 대학 시절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과업 수행은 나와의 싸움을 넘어,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경쟁의 연속이다. 늘 경쟁에 직면하면서 노력과 공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렇다고 이 과정에서 요행을 바라지는 않는다. 결과는 뜻밖의 상황이나 경우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 과정에서 한 만큼 비례하여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보다 못 나올 수는 있어도, 잘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평소에 바라기 힘든 요행을, 이렇게라도 바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요행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소에 들이기 쉽지 않은 설레는 마음을 겪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여긴다. 매주 로또를 구입하는 일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즐거운 상상을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기에 그걸로 되었다. 당첨되는 상상만큼은 늘 자유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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