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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Jul 31. 2021

여름날이 간다

봄날이 가듯, 여름날도 가더라

최근에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다시 보았어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땐, 상우의 시각에 몰입한 탓에, 은수가 그렇게 나빠 보일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동안은 이 영화를 자연스레 멀리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 자꾸만 올라와서요. 상우는 그저 은수를 향한 감정을 늘 안고 살았는데, 어느 기점 이후의 모습이 애처롭고 불쌍해 보여, 영화를 보는 것이 적잖이 힘이 들었어요. 


그런데 <봄날은 간다>를 여러 번 들여다볼수록 은수의 시각에서 감정에 이입이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어느 순간엔 <500일의 썸머>가 오버랩되기도 하였고요. 예전에 브런치를 통해서도 <500일의 썸머>에 관해 글 쓴 적이 있었죠. 그때마다 늘 톰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고는 하였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썸머의 행동에 정당성이 느껴지면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깊이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한 사람을 향한 순애보 같은 마음이, 실망과 원망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상우의 모습은 톰과 정말 많이도 닮아 있어요. 은수와 썸머도 전체적인 궤를 같이 하고 있고요. 저는 <봄날은 간다>의 둘, 그리고 <500일의 썸머>의 둘을 다시금 바라보며, '사랑'을 하는 데 있어, 거짓말을 하거나, 해선 안 될 행동을 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잘잘못을 가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절감하게 되었어요. 계산하지 않고, 재고 따지고 하는 것 없이, 두 사람이 오직 그 감정에만 충실했다면, 누가 잘했고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상우와 은수 모두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톰과 썸머가 그런 것처럼요. 서로 처한 상황이 달랐고, 생각과 관점이 달랐으며, 사랑에 관한 가치도 달랐던 거죠. 만남과 관계를 셈법으로 접근하지 않고, 당신을 위한 감정에 충실했던 지점과 순간, 그 시간만을 오롯이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바라보게 되었어요. 스스로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영화가 주는 힘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역병으로 힘든 시기이지만, 아끼는 영화와 함께 이 계절을 편안히 보내기를 바라요. 영화 속에서 봄날이 지나가듯, 조금은 힘든 이 여름날도 잘 지나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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