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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Jan 29. 2022

봄을 기다리는 나목

그의 그림을 통해 지나온 억겁의 시간과 마주하다

몇 겹의 밤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때때로 늦은 깨달음은, 그간 없던 행동을 하도록 돕는다는 것을. 무성히 쏟아내던 넋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몸속에 남아 있던 부유물을 비워내기 위해서는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만 하였다. 그제야 걷고, 보고, 생각해야 한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걸으면서 평소에 들어오지 않았던, 정확히 말하면 그간 담지 않아 왔던 모든 걸 몸에, 그리고 마음에 담아내고, 또 그로 인하여 떠오르는 것들을 써 내려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박수근의 작품이 걸려 있는 곳에서, 입을 통하여 애절한 서정시를 읊조려내는 한편, 눈으로 그의 그림을, 귀로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그러자 입에서 나오는 말글과 손짓, 몸짓, 발짓이 가져다주는 산출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정처 없는 소요에 심취하다 보면 비워냄과 동시에 들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좋은 나머지, 종종 밤낮 할 것 없이 걷고 또 보았다. 곳곳에 나의 흔적이 닿는 걸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결국엔 오롯이 그 공간에 도취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지금의 나를 지나온 억겁의 시간을 만나게 되어 그 시간에게 "어땠어?"라고 물었다. 어디선가 물음에 대한 답변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아직은 살만해. 그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리고 반가운 소식 하나 더 전할게. 곧 봄이 찾아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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