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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Feb 06. 2022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의 서정시는 <월하의 마음>과 맞닿아 있었다

회사 도서관에서 우연히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만날 수 있었다. 겨우내 소복 눈이 쌓인 환기미술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이 책을 구입하려 마음먹고 있던 만큼,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였다. 난 이 책에서 화가로서의 그의 삶은 물론, 상경하여 서울에서 치열하게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삶,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의 따듯하면서도 애절한 마음까지 모두 목도할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간 '화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게 되었다. 화가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결과물을 화폭에 담아내는 사람이지만, 이 과정에서 샘솟는 모든 것들을 글로써 그려낼 수도 있는 사람이어서다. 이처럼 김환기는 글을 통해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그려나간 사람이었다. 그의 글을 보며, 정말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며 산 사람이었구나, 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단단한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했다. 그런 자존감이 지금의 김환기를 만든 힘이 아니었을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엔 그의 부인 김향안과 서울, 파리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이 담겼다. 아내 향안을 생각하는 절절한 그의 마음을 보고 있으면, 그는 화가 이전에 좋은 남편이었구나를 틈틈이 깨닫는다. 이 같은 서정시는 김향안의 <월하의 마음> 속 김환기를 향한 마음과도 맞닿아 있다. 김환기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가가 만들어낸 그림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환기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새 전시 준비에 돌입했단 소식을 들었다. 전시가 열리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통해 들이게 된 마음으로, 다시 그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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