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하게 생각나는 밤
줄곧 지난한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 일월의 겨울 밤하늘이 그리도 슬퍼 보일 수 없었다.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방향성을 잃은 시점에서 무작정 북촌을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을 뿐이다. 우연히 발길을 멈춘 지점에서 그곳과 그를 마주하였다. 그러고선 정적이 그득한 곳에서 흘러나오던 음악과 함께 부스 안에서 정성스레 건네진, 온기 머금은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이 잘도 좋았다. 그 어떤 것보다도. 금세 그 공간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 이후 언제든지 그곳은 내게 위로를 건네주었다. 지난한 시기를 거치는 동안에, 무른 마음이 차츰 단단해져 갔다. 그곳이 있어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공간의 문이 닫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좀더 많이 생각할 걸, 좀더 자주 찾아갈 걸, 하는 후회가 그득했다. 무려 2년 만에 열린 정준일의 소극장 <겨울> 공연에 다녀온 뒤 갑자기 북촌의 그곳이 생각났다. 그가 만들고 부르던 ‘그랬을까’를 그곳에서 반복적으로 듣던 때가 있어서다. 그리하여 지난 시간을 꺼내 들어 마주한다. 돌아갈 수 없단 걸 알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다 이내 억누른다. 기억은 선명한 현실이 아닌 만큼, 아득한 기억으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어서다. 겨울 그날, 그 밤, 그 노래가 흐릿하게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