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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Jun 22. 2018

'예측 불가능함'의 두려움

교토 여행을 하던 도중 지진을 겪다

지난주, 특별한 계획도 일정도 없이 무작정 교토행을 결정지었다. 단지 비행기 티켓과 혼자서 나흘간 묵을 거처만 예약해 놓고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여행지에서 자연재해를 겪게 될 것이라는 건. 여행 사흘째를 맞은 18일 아침. 그때 난 지난밤에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틀어뒀던 텔레비전 소리에 어느 정도 잠을 깬 상태였다.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여행지에서 맞는다는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런데 시계가 여덟 시를 가리키기 전쯤 갑자기 방이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쿵쿵 쿵쿵’이라는 소리와 함께. 처음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인 건가 싶었다. 파리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도 밤낮으로 열차의 진동과 소리를 느끼면서 지내서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 크고 진동이 너무 세서 마치 건물이 무너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내 지진이란 걸 알았다. 여권이나 다른 걸 챙길 새 없이 휴대전화만 갖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때마침 호텔 안내방송에서 지진을 알리는 경보가 울렸다. 


6층에 머물고 있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계단을 통해 로비로 내려가려 했다. 다른 방에 머물던 사람들도 뛰쳐나오거나, 문을 열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반대쪽 건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짐을 챙겨 1층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슬리퍼를 끌고 로비로 내려갔지만, 오히려 호텔 직원들은 당황한 투숙객에 비해 평온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투숙객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인 듯 보였다. 그렇게 크게 요동을 치던 건물은 금세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제야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무작정 로비에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텔레비전에서는 모든 언론들이 지진을 속보로 다루고 있었다. 특보에서는 이날 오전 7시58분쯤 오사카부 북부에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했다
고 설명했다. 이로 인하여 진원지와 가까운 교토에도 그와 비슷한 규모의 진동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간 큰 지진이 없던 오사카부 북부에 규모 6.1의 지진이 강타한 만큼, 현지 언론에서는 하루 종일 지진 특보를 방송했다. 그 심각성이 컸던 탓이다. 그간 살아오면서 지진을 처음 겪은 만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여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 곧바로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지진의 영향으로 철도가 마비되고 도로도 일부 통제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실상 우회하지 않고서는 교토에서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거의 갇힌 것처럼 정상화되는 순간까지 버텨야만 했다. 그렇게 지진이 난 후 규모 3, 4 정도의 여진이 이어졌다. 뉴스를 보니 그간 지진에 익숙하지 않았던 오사카와 교토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일부 슈퍼에선 생수와 비상식량 등이 동이 날 정도였다고 보도됐다. 방 안에서는 지진 속보가 나오고 있었고, 나는 벽에 기대어 있기만 했다. 무얼 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러다 정오 즈음에 또 한 번의 여진이 발생하여 무작정 숙소를 나와야만 했다. 걷고 걷다, 지쳐 다시 숙소에 들어왔던 것 같다. 특히 이후에는 방 안에 가만히 있어도 마치 여진이 오는 것 같은 진동을 자꾸 느꼈다. 문제는 그게 실제 여진인지,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심리적 데미지가 너무나도 컸다. 숙소 안에서 혼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언제 다시 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이 너무 크고 두려웠다. 그래서 자꾸 호텔 밖을 나갔다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제 또다시 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함’을 느껴야만 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진을 겪을 때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그런 감정. 결국, 선잠에 들지도 못한 채 모든 짐을 다 싸 두다. 지진이 나면 대피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열차 운행이 중단되어 공항 리무진 버스까지 예약해뒀지만, 다행히 다음 날 열차 운행이 재개되어 첫 열차를 타고 도망치듯 교토를 빠져나와 간신히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으로 가던 도중에도 몇 차례 여진이 있던 탓에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중간에 운행이 멈추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다. 다만, 지연운행으로 1시간 10여 분이 걸리는 거리가 2시간 넘게 소요됐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공항철도 안에서까지. 집 문을 여는 순간, 불안한 마음으로 인하여 까먹었던 피로가 몰려왔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잠들었다. 여독을 푸는 과정에서 불안했던 마음이 차츰 안정되고 있단 걸 느낀다. 이번 지진이 내게 준 교훈이 있다면, ‘매 순간 충실하라’인 것 같다.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발생했을 때 삶을 뒤돌아보면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하게 되어서다. 그렇게 지진과 함께한 나의 교토 여행은 끝이 났다.


사진=지진이 발생한 이후 현지 언론에 방영됐던 지진 특보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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