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축하 알림글을 받은 후 가장 최근에 써둔 글을올렸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 우리 가족 톡방으로 공유했지요. 미리 말하지 않은 우리 가족들의 반응은이렇습니다.
남편 ㅡ 리얼하게 잘 썼네.
아들 ㅡ 웬 작가 ㅋㅋ
왜 갑자기 글 쓰는 겨
딸 ㅡ 갑자기 왜 작가님이 된 거야ㅋ
그리고 나에 첫 번째 구독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작년 11월 요양원에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폐렴으로 중환자 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단했던 통기타를 다시 시작한 지채몇 달도 되지 않았지만 그날로 거실에 있던 기타와 악보들을 모두 치워버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아프신데 기타 치며 노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퇴직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남편이 점심을 먹고 탁구를 치러 가고 나면 오롯이 나만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기타를 치곤 했었는데이제는핸드폰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브런치가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지요.
예전부터 남편이 가끔 지나가는 말처럼 "글을 써보지" 하기도 했었지만 크게 와닿지않았습니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에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체육대회와 소풍을 갈 때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명예교사를 부탁하셨습니다.그때나와 같은 이유로 학교에 온 친구를 처음 만났지요. 우리는 동갑이라는 이유로 급격히 가까워졌고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굴곡진 인생길을 걸어온 친구에 안타까운 사연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조심스러운 일입니다.내가 쓴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내게만 털어놓은 그녀에 이야기들을 이곳에 다 옮길 순 없지만 밤늦도록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 함께 눈물을 흘린 시간만큼 가까워진 친구입니다. 친구는 Y대 평생교육원을수료한 후 논술교사로 활동하면서열심히 시를 쓰더니 시인으로 멋지게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친구가 같이 수강하자고 했지만 아쉽게도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나에 절친 중에 한 명이지만 내가 이사를 하게 된 후로우린 일 년에 몇 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알림글을 받았을 때 그 친구가 먼저생각났습니다. 그 친구가 알게 되면 가장 기뻐하고 축하해 주겠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많은 글을 쓰고 작가로서자신감이 충만해졌다고 느껴질 때 그때는 생각해 볼지도 모르겠습니다.(뭔 자존심인가 싶기도 하지만요 )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쓸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은 친정어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온전히 기억하고 순간순간 느꼈던 그 감정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 글쓰기는 해가 바뀌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작가신청을 해 놓고 혹여 되지 않더라도 내가 써 온 글들을 두고두고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브런치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제 작가로 승인이 되어 어머니께서먼 길을 떠나시고 마음정리가 되는 날 차례로 그 글들을 올리려고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던 날들을 추억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