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정리하다 미처 발행하지 못한 글이 있어 시일이 지났지만 올려봅니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반성을 하면서요.
아직은 차가운 계곡물이라도 좋았다. 몇 년 만이야! 펜데믹으로 가로막혀 우리들에 일상은 잠시 멈춤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를 쓰고 시간을 내고 싶었다. 함께라는 것은 우리에게 늘 행복을 선물해 주었다. 누구와 함께여야 한다는 명제가 남아있지만, 무려 20여 년이나 함께해 온 우리들 이기에 더없이 설레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댄 하루였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모임도 얼마 전에야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만, 아무리 오랜만의만남일지라도 어제도 그제도 만났던 것처럼 화기애애하다. 우리들은 산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산이 좋아 이곳저곳 명산을 찾아 언덕길에 골짜기에 땀방울로 흔적을 남겼다. 거친 산길에서, 뾰족한 바윗돌에서, 가파른 언덕길에서도 손을 내밀어 주며 함께 손잡고 달려온 산동지들이다.
한해의 시산제로 시작하여 아름다운 상고대를 찾아 겨울산행을 떠났다. 콕! 콕! 아이젠이 찍어대는 발자국을 남기며 오른 아름다운 겨울산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얼음사이로 봄빛이 흐르고, 나뭇잎들이연둣빛으로 피어나고. 꽃망울이 터지던 날에도 몸도 마음도 화사하게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한여름에 태양이 이글거리던 날, 오늘처럼 시원한 계곡을 찾은 날에는, 어린 날에 그 소년, 소녀로 돌아가곤 했다. 물장구를 치고 물싸움을 하다 평상에서 먹고 마시며 삶에 찌들었던 고단 함쯤은 말끔히 날려버리며 여름야유회를 마음껏 즐겼다.
나는 산악회 원년멤버다. 어느 날 퇴직을 앞두신 동장님께서 각 단체장과 총무들을 초대하셨다. 유난히 우리들과 돈독하게 지내셨던 동장님께서는 떠나시는 게 아쉬우셨는지, 산악회 결성으로 지역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지속되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통장협의회 총무였던 나는 이유불문하고 갑자기 결성된 산악회 원년멤버가 되었다. 맨 처음 통장으로 임명해 주시며 각별한 애정을 주셨던 인자하신 어른으로, 늘 단체들의 화합을 위해 애쓰셨던 분이셨기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다.
각 단체장님들의 통 큰 찬조와 지역주민들의 많은 참여로 서너 대의 버스가 만석이었지만, 명산은 물론이요 가장 저렴한 회비로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며 승승장구를 달렸다. 하지만 주위에 우후죽순 산악회가 만들어지고, 선거철에는 철새처럼 떠나버리고, 산악회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버스 1대로10여 년 이상을 유지해 왔었다. 하지만 차츰 산악회도 시들해지고 보험관계와 주체자의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결국 산을 좋아하는 20여 명만이 남아 친목회가 되어버렸다.
봄이라서 좋고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추위를 몹시 타면서도 겨울산행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던 나는 사계절의 산행에 동참하며, 산악회 카페지기로 남아 있었다. 어느덧 나이도 들어가고 회원들에 얼굴도 바뀌고 바뀌어 원년멤버는 현재의 회장님과 나뿐이다. 20여 명의 회원들과도 작은 버스를 빌려, 제철음식이 맛있는 곳 근처의 둘레길을 찾아 떠나곤 했었다. 이도 오래지 않아 이사를 가시고, 몸이 불편해지신 분들이 못 오시니, 지금의 10여 명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세월 따라 변해온 산악회는 한 달에 한번 동네맛집을 돌며 지난 산행에 추억을 술잔에 가득 띄우며 그때를 반복한다. 추억이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맛집에 안주와 수없이 씹어대도 질리지 않더니, 이제는 몇 명 안 되는 회원들에 가정사까지 꿰며 토론에 장이 되곤 한다. 그래도 술을 못하는 유일한 재미없는 회원인 나는 몇 번이고 그만두려 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가겠느냐며 한사코 붙잡는 통에 발을 빼지 못하고 원년멤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쨌든 덕분에 참 많은 사람들에 면면을 보게 되었고, 술 없이도 잘 놀 줄 알고, 그들에 수위를 넘나드는 음담패설에도 기꺼이 웃어줄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오늘도 돌아오는 승합차 안에서, 술이 만땅이 되어버린 이순을바라보는 막둥이 숙이의 하소연에, 울고 웃다 보니 집 앞에도착하였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들춰보면 누구나 한 두 가지근심걱정쯤은 안고산다고 했다.그렇게쌓인 괴로움들은 오늘하루에 야유회로 말끔히 털어버리고, 우리 회원 모두 평안한 삶이 이어 지길 바라본다.
언제까지 이 친목회가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 모두 가을이 되어가고 있다.고운 단풍으로 온산을 물들였던 그날에 그산을 떠올리며,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함께 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부디 그 추억을 조금씩 꺼내 먹으며,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회원님들이 산악회 카페에 올려주셨던 소중한 글과,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찍은활짝 웃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문득문득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