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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l 25. 2023

빗속에 떠난 여름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좋은 휴가

비는 사정없이 쏟아붓고 와이퍼는 혼절할 지경이다. 이 와중에 안 갈 수도 없고 별다른 설렘도 감흥도 없이 새벽에 일어나 주섬주섬 대충 짐을 꾸려 출발했다.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숙소를 알아보더니 홍천에 잔여객실을 잡았으니, 같이 가자는 딸의 요청에 따라나섰다. 우리가 정했더라면 분명 이 빗속에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자들이 방학을 맞아 워터파크에서 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우리만 빠지겠단 소리도 못하고 출발했다.


여름이면 어디로든 떠나고픈 마음에 폭풍검색에 들어간다. 그리고 운 좋게  잡은 숙소를 향해 떠나려는 차량들로 모든 도로는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오늘은 비가 와도 너무 많은 비가 내려서인지, 처음 보는 한가한 도로를 느긋한 마음으로 달렸다. 투닥거리는 빗소리가 정신없을 뿐이지 막히지도 않고 요렇게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매년 떠났던 여름휴가는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추억들로 쌓여 왔다.


아이들이 대여섯 살이 되면서 처음으로 나섰던 여름휴가는 소나무밭에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하는 거였다. 그것도 우리 가족만이 아니고 시동생가족 또는 신우님 가족들까지 동원되는 날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 많은 인원들이 먹고 움직이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인원이 너무 많아 감히 외식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나고 보면 그다지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면서 왜 그리 힘든 여름휴가를 갔을까. 형만 바라보며 휴가타령 하는 동생들 때문에 장님으로서의 책무 중에 하나였을까. 어쨌든 나에게는 여름휴가는 휴가가 아니면서도 나쁘지 않다. 모든 준비는 맏며느리인 나에 몫이었기에.


며칠 전부터 끼니수에 맞추어 메뉴를 정하고 식재료를 배분하여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담고, 여벌옷까지 챙기면 차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짐을 풀어놓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가져간 김치와 반찬들로 밥을 먹는 것이 왜 그리 좋았을까. 아무리 소나무밭 그늘이라도 8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지글지글 고소한 해물야채 전을 부쳐대는 것이 고역임에도 철없이 맛이 있었다. 앞집 옆집에 민폐였지만 매년 그 해물전만큼은 거르지 않았다.


한 해 한 해 장소는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다. 막사에서도 자보고, 내무반에서도 자보고, 드디어 콘도를 이용하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형제들이 숙소 몇 동을 예약해서 다녔지만, 코로나 후로는 자연적으로 각자가 되었다. 할렐루야다! 함께 가는 것도 좋지만 숙소예약과 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일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홀가분하다. 이제 아이들도 각자 가정을 이루고 알아서 하루든 이틀이든 가자 하면 오늘처럼 따라나선다. 식구수도 적고 간단하게 사 먹으니 별부담도 없고, 마음 편히 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미 손자들은 입실도 전에 수영장으로 가버렸다. 잠시 후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옮기면 나에 할 일은 끝이다. 비가 좀 뜸해지면 우산 받쳐 들고 주변 산책이나 하며 즐기다가 갈 요량이다. 꽉 막힌 아파트숲을 벗어나 산과 하늘뿐인 낯선 이곳이 참 좋다. 적당히 내리는 비도 카페를 들락거리는 피서객들도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이 안에 모든 시설이 있으니 먹고 싶으면 사 먹고, 놀고 싶으면 놀거리도 그득하니 아쉬울 게 없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빗물을 뚝뚝 흘리는 꽃잎들이 사랑스럽고, 바람 타고 휘리리릭~ 퍼지는 빗물이 아름답다.


사람들은 왜 모두 떠나려는 걸까. 결국에는 내 집이 최고라고 할 거면서도 늘 떠나려 함에 목마르다.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풍경으로 만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일까. 산봉우리 끝으로 쉼 없이 빠르게 흐르는 운무에 빠져 넋을 놓고 보았다. 아무것도 할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매일 바쁘게 일하는 사람도 아니건만, 온전히 모든 일들에서 벗어나 나를 쉬게 한다는 것이 이리도 좋을까. 여유가 된다면 가끔은 어디든 어느 때든 떠나보자. 참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욱 좋은 특별한 여름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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