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에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절호에 찬스다. 사이가 좋아도 느무느무~ 좋아서 삼시 세끼를 늘 같이 먹는 우리 부부다. 당신은 퇴직을 했는데 이 몸은 어느 것에서도 퇴직은커녕 갈수록 무수리 노파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오늘같이 친구와 점심약속이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몰래몰래 콧노래가 삐져나온다. 나 혼자 두고 맛있는 거 혼자 먹으러 가서 마음껏 미안해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심드렁하게 약간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당신도 없는데 아무거나 때우지 뭐" 하며 애처롭게 보여야 한다.
아침에도 야채과일 샐러드 한 사발로 때웠으니, 점심은 밥을 먹기로 했다. 어제 남은 밥 반공기를 데우고, 역시 어제 먹던 호박나물, 짭조름한 우엉볶음, 두릅장아찌를 올리고, 냉장고에 돌아디니는 상추, 오이를 넣었다. 나를 위한 만찬인데 데코는 해야 있어 보이겠지! 노란 파프리카, 빨간 방울토마토를 올리고 노른자가 싸라아~있는 계란프라이를 얹으니 그럴싸하다. 그래도 아쉽다 싶으면 김가루 솔솔 뿌려 무수리답게 양손에 수저, 젓가락을 들고 쓱쓱 비벼 입이 미어터지게 집어넣어 본다. 켁!켁!켁! 이건 무수리노파에겐 무리수야!
조금씩 꼭꼭 씹으며 이제 별게 다 무시를 하나 싶어 서글퍼지려 한다. 커다란 양푼에 잘 익은 열무김치와 시뻘건 고추장을 듬뿍 넣어 쓱쓱 비벼 입이 터지도록 먹던 그 시절은 티브이 먹방으로만 보게 될 줄이야. 어쨌든 애써 여러 반찬 상에 올리는 수고 없이 간단하게 우아하게 꼭꼭 씹으며, 온갖 야채들의 향을 음미하며 잠시 여왕처럼 나만의 만찬을 즐겼다.
가끔 혼자 먹는 한 끼가 이벤트가 되기도 하지만, 매일같이 조금은 다른 반찬으로 끼니를 차린다는 게 이론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보면 감히 해낼 수 없는 일들이다. 다만 40여 년을 차리다 보니 어떻게든 차려냈고 먹어왔다. 어쩌다 밥 차리기에 지겨워진 아낙네들이 모이면 어디 캡슐 한알로 먹고살 순 없는 거냐고 아우성이다. 이런 주부들의 고충을 그 누가 알아주리오. 아무리 배달음식에 간편식이 대세여도 그것도 한두 끼지 결국은 주부들의 몫이다.
<아침식사와 점심만찬>
인공지능이 아무리 판을 쳐대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밥순이들의 고충은 언제나 가벼워지려나. 먼저 아침으로 먹던 식단을 바꾸었다. 누룽지와 블루베리, 아몬드, 방울토마토를 넣은 요거트에 계란프라이나 구운 두부, 김치 두어 가지를 상에 올리던 것을 스프와 과일야채샐러드로 바꾸었다. 이렇게풀떼기만 먹다가는 해탈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샐러드에 삶은 계란이나 구운 두부, 상추, 오이, 파프리카, 브로콜리, 아몬드, 방토, 블루베리를 다 때려 넣고 각종드레싱을 취향껏 뿌려 먹는다.
김치와 누룽지, 요거트만 빠졌을 뿐 손이 가는 건 역시 별다를 바 없지만 점차 간소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다. 아직도 남편의 퇴직을 앞둔 무수리들의 걱정은 산과 강을 이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들은 평생 돈 벌어왔으니 쉬어야 한다며, 당당하게 삼시 세끼를 받아먹으려 한다. 앞으로는 세대가 바뀌고 마인드도 변해가며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제발오은영박사님 말씀대로 한 끼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 주면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