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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19. 2023

엄마의 김치계란찜

지랄 허네

어유 지랄이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옆에서 듣던 내편이 "왜 욕을 하고 그래" 하며 정색을 한다. 이게 욕인가! 한 번도 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욕이란다. 그럼 물어봐야지 당연 지식인에게. 검색해 보니 누군가가 이미 물었고 그 답변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지랄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행동한는 뜻으로 단어 자체는 욕이 아니지만,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욕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원래의 뜻은 뇌전증을 가리키는 순우리말로 지랄병이라고 부르며 뇌전증의 증상 중 하나인 간질병에서 지랄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것이라 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순화되어 왜 지랄이야가 왜 난리야 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우리 시어머니께서 가끔 쓰시던 지랄옘병(헛소리나 허튼짓을 비하하는 용어)은 한술 더 떠 지랄(뇌전증) + 염병(장티푸스)이 걸린 상태를 일컫는다 하니 더 오싹하다.




엄마는 그러셨다. 엄마가 해주신 김치계란찜을 먹으며 호들갑스럽게 맛있다를 연발하면 겸연쩍스럽게 웃으시며 "지랄 허네"  코로나19 감염으로 입맛을 잃고 말았는데 엄마가 해주셨던 김치계란찜이 유난히 생각이 난다. 이제는 먼 길을 떠나셨기에 다시 맛볼 수는 없지만 겸연쩍게 웃으시던 그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몸이 아프더니 맴도 더 약해졌나, 오늘따라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진다. 잘 계시지요! 이넘에 코로나19  때문에 아버지 기일에도 못 갔어요. 죄송해요!


김치계란찜은 계란을 몇 알 풀어 잘 익은 배추김치와 파 송송 썰어 넣고, 물을 약간 부어 들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면 그만인 간단한 요리법이다. 물론 일반 계란찜과 별 다를 바 없겠지만 김치를 넣어줌으로 인하여 느껴지는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간은 입맛에 따라 새우젓이나 소금을 넣어 잘 저어주며 몽글몽글 익어가기 시작할 때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아주면 잔열로 맛있게 완성이 된다. 아니면 큰 냄비에 물을 넣고 중탕을 해주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엄마는 커다란 가마솥밥이 부글부글 끓고 나면 계란양푼을 솥 안에 넣었다가 밥이 뜸이 들고  후 잘 익은 김치계란찜을 꺼내어 상에 올리시곤 했다. 또는 아궁이에 남은 불씨 위에 뚝배기를 올려 알맞게 익힌 그 계란찜은 최고의 맛이었으니 오두방정을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우리 오 남매를 키우시면서 단 한 번도 모진 말을 쓰시거나 욕 비스무리한 말도 하신 적이 없으셨다. 비록 두 분 다 배움이 짧고 가난을 달고 살았지만 늘 정이 좋으셨기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세상은 수많은 욕들로 넘쳐났고.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몰라 그저 가슴앓이를 하며 단단해져야 했다. 너무도 다른 환경 시집 칠 남매의 말들은 억세기만 했고, 특히나 그 시절 남자들만의 소굴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내편이었으니 본인은 욕이라 생각지도 않으며 무심코 뱉어내곤 했다. 물론 질색팔색을 하는 나나 아이들에게는 그러지 않았지만 생활 속에서 은연중에 튀어나와 내 잔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다. 지금은 되레 내편이 왜 욕을 하냐며 정색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래도 욕은 아니라지만 지랄이라는 단어와는 그만 이별을 해야겠다. 엄마도 그 뜻의 유래를 아셨다면 절대 사용하지 않으셨을 이다. 그래도 엄마가 해주셨던 그 김치계란찜만은 잊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먹고 싶어질 때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그 맛을 구현해 나갈 것이다. 오늘도 김치계란찜을 만들었다. 참 맛있다. 무진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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