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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22. 2023

호칭! 아~ 쉽지 않아

지금! 부모님 챙겨보심은 어떨까요.

며느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은이 아빠가 그러는데 00 했다는구나. 어쩌고 저쩌고~~~~. 자꾸만 옆에서 내편이 뭐라 하며 끼어든다. 통화를 마치고  왜 전화통화 중인데 그러실까 했더니 듣는 며느리 기분 안 좋게 딸이름 이며 은이아빠!라고 하면 그건 아니란다. 아~그런가! 또 헷갈린다. 아무 거리낌 없이 아빠 앞에 큰아이 이름을 붙여서 불렀는데 이것이 또 문제란 말인가. 주위에서는 물론이요 시누이들도, 언니도 그렇고 대부분 큰아이 이름을 붙여 '00이 아빠'라고 칭하며 상대에게 말하거나 부를 때도 그리 부르곤 다.


그것이 문제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많지도 않은 자식 달랑 둘인데 사위에게는 내 딸이름을 붙여 은이아빠가 ~~ 해도 괜찮겠지만, 듣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남편이 아닌 누나이름을 붙여서 칭한다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럼 뭐라 해야 하나. 물론 집에서 부를 때는 여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를 네 아버지가, 니 시아버지가 ~~~ 그러기도 그렇고,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손녀딸 이름을 붙여 00이 아버지라 부르기로 했다. 이도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나름 궁리해 낸 결과이다.


그럼 우리가 가장 많이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 속에는 누구라고 저장해 놓았을까 궁금해진다. 내편은 칠 남매의 장남으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자존심 철통 같고, 완벽에 가깝고.....(같이 살날이 많아서 생략)..... , 칠자에 가까우며 나와 연식도 차이가 나는 편이다. 젊어서는 뭘 어찌하든 무서워서 ! 소리 못하고 살았지만 지금 이 나이 들어 쉽지 않지만 바꿔나가는 중이다. 나는 역시 "내편"이라고 저장해 놓았다. 이유야 간단하다. 같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도대체가 내가 말하면 들어주지 않다가도 남이 이야기하면 홀라당 넘어간다. 그리고 내 말보다는 다른 사람 말을 더 잘 들어주는 경향이 있어 내 바람을 담은 호칭이기도 하다. 물론 남편이란 뜻이 '혼인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라는 것은 모두 알 것이다.


예전에는 내 사랑이라 저장했었다. 이도 세월이 흐르니 뭔넘에 사랑, 넘사시러워 내편으로 했는데 요즘은 이마저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럼 뭐라 저장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가장 유력한 단어는 '옆지'이다(에서 지켜줄 사람 ㅎ). 글을 쓸 때도 남편이란 말이 싫어서 거의 내편이라고 쓰고 있지만 썩 편한 호칭은 아니다. 그럼 내편은 뭐라고 저장했을까 궁금하시려나. 예전엔 "마누라"였다. 나의 항의로 인하여 아내로 바꾸었다.  역시 중년이 넘은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지식백과에서 어느 어원풀이에 의하면 '마주 누워 자는 여자' 라니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는 일반적으로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지만 이 아내라는 단어는 전근대까지도 '안해'라고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안에 있는 사람 안사람으로 칭하기도 하지만 우연히 어느 분께서 안해'집안을 따스하게 밝혀주는 해'라는 뜻으로 풀이하며 나를 아주 흡족하게 하였다. 요즘은 세대별로 부르는 호칭이나 표현하는 방식들이 다양하다. 보편적으로 신부, 아내, 집사람. 안사람과 가장 싫어하는 여편네가 있다. 이 여편네 역시 나의 강력한 항의로 인하여 쓰지 않는다. 하고 많은 말 중에 속된 말로 분류되는 '자기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여편네를 가끔 쓰곤 했다. 물론 알고 쓴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하대하는 것 같아 영 듣기 싫었다.




세대마다 가정마다 부르는 호칭도 쓰이는 단어들도 다양하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손짓을 하며 '어이~'였다. 한 살 위인 엄마를 극진히 아끼셨건만 호랑이 같으셨던 할머니 때문이셨는지 잘 못 알아듣는 엄마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젊으셨을 때부터 잘 듣지를 못하셔서 작은아버지께서는 형수임에도 불구하고 타박을 하시곤 하셨다. 그런 작은 아버지를 참 싫어했었다. 아버지께서도 뭐라 하지 않는데 시동생이 그런다는 것이 엄마를 아래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세월이 흐르고 병원출입이 잦아지면서 엄마를 모시고 보청기 문제로 의료원에 갔다가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는 선천적으로 한쪽 고막이 없이 태어나신 거였다. 그 세월 동안 한쪽귀로만 들으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야 엄마의 불편함을 알게 되다니 너무 죄스럽고 많이 미안했다. 다들 지들 살기만 바빴을 뿐 하나밖에 없는 부모는 제대로 살핀 적 없었기에 참 많이도 후회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보청기도 해드리고 왜  못 들으시는지 주위사람들을 이해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늦어버린 뒤였다.


형님이 떠나시고 형수마저 떠나자. 당신 몸도 말기환자이시면서 엄마영정사진 앞에서 목놓아 우시던 작은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많이 미안하셨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렇게 눈물이 멈추어지질 않는데.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떠나신 뒤에야 더 잘 알게 되었다. 호칭문제로 쓰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제 와서 눈물 콧물 쏟아봐야 말짱 일이지만 부모님이 계시다면 이 시간 좀 더 살뜰히 챙겨보시면 어떨까 싶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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