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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31. 2023

아파도 공부를 해야 한다네요

포켓몬아 고마워!

우리 세 번째 꼬맹이가 많이 아파요. 며칠째 열이 나고 고생을 하고 있다네요. 에고 우짜나~ 목이 조금만 부어도 열이 나는 편이라 며칠 또 고생하겠구나 싶었는데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네요. 우얄! 그러지 않아도 또래보다 성장이 느린 편이라서 예리 예리하고 가냘프기 이를 데 없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어찌나 똘망하고 야무지던지 손힘이 좋아 만 4세임에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그네를 훨훨 날듯이 잘 타고, 애써 가르친 적 없는 한글도 떼어버리고 책을 술술 잘 읽습니다.


렇게 인형같이 작고 예쁜 꼬맹이가 열이 나고 아프다 하니 마음 저리도록 안타까울 뿐입니다. 멀리 양양에 있으니 자주 보지도 못하고. 달려가서 안아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에 유치원 방학으로 일주일간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딸네 첫째, 둘째 꼬맹이까지 모두 방학이다 보니 끼니와 간식 챙겨 주기도 바빠서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그때도 갑자기 목이 붓고 열이 나서 고생을 했고요. 다행히 조금 나아져 주말이틀을 함께 하며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포켓몬빵도 사러 다녔습니다.


아파트 앞'구멍가게'라는 상점이 있습니다. 지나다 보면 어린아이들이 연신 드나드는 것을 보았지만 굳이 내가 살만한 물건은 없을 것 같아 들어가 본 적은 없습니다. 마침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기에 일찍 일어난 꼬맹이와 무인상점인 그 가게를 갔습니다. 입구부터 포켓몬카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온갖 주전부리들이 그득합니다. 꼬맹이 눈이 금세 반짝이며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좋아하는 포켓몬 카드와 포켓만빵도 사들고 와서는 빵을 부지런히 먹고 카드도 개봉해 보니 귀한 반짝이카드라며 몹시도 좋아하네요.


다음날에도 손안에 쏙 들어오는 말캉하고 앙징맞은 손을 잡고 아침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여느 날처럼 우리 아파트는 고요함 그 자체입니다. 그래도 작은 연못에서는 물고기들이 유영하며 꼬맹이에 눈길을 잡고, 쉼 없이 뿜어대는 분수대의 물보라에 심심치 않은 산책입니다. 한 바퀴 돌고는 오늘은 먼저 제안을 했지요. "포켓몬카드 사러 갈까나" 했더니 아빠가 또 사면 안된다 했다네요. 음~ 그래도 할머니가 많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오늘이면 양양으로 돌아가야 하니 사주고 싶다 했더니 뽀샤샤한 얼굴에 예쁜 눈이 초승달이 됩니다.


그렇게 놀다가 돌아꼬맹이도 역시 꼬맹이인지라 다음날도 포켓몬빵을 사고 싶다 했지만 들어주지 않는 사돈을 향해 불만을 터트렸다 하네요. 00 할머니는 사주는데 여주할머니는 왜 사주지 않느냐며 나는 00 할머니만 좋고 여주할머니는 싫다 했다네요. 이를 어쩐대요. 어찌나 죄송스러운지 괜스레 쓸데없이 나쁜 버릇만 들여서 보냈나 싶었지요. 그러지 않아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부지런한 아이인지라 돌봐주기 어려우실 텐데 까지 보탠 격이 되어 버렸네요. 


아들이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게 되면서 발령문제로 잠시 우리 집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며느리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데 주말부부가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돈들께서 돌봐주시고 계시는데 오히려 곤혹스럽게만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약속을 해버렸어요. 방금 전 동영상 통화를 하면서 또 열이 올라 게슴츠레한 눈에 슬픈 표정이 가득한 모습을 보니 어찌나 가엷던지, 도 잘 먹고 얼른 나으면 무엇이든지 해주겠다 하니 포켓몬카드를 가지고 싶다네요.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어요. 할머니집에 오면 또 사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해버렸지요.


어찌나 기억력이 좋은지 한번 한 약속은 절대 잊지 않는 총명한 꼬맹이 인지라 지켜야만 합니다. 다만 포켓몬카드는 이 할머니만 사주는 거로 꼭 약속을 해야겠어요. 열이 나고 힘이 들면 보채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열이 조금 내렸다 싶으면 아파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책을 읽고 있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요. 열이 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원시인처럼 헐벗고 이마에는 열패치를 붙인 채 책을 읽고 있는 동영상속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납니다.


그깟 포켓몬카드 몇 박스라도 사줄 터이니 얼른 나아지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아이는 아프면서 큰 다지만 아픈 꼬맹이들을 보는 건 내 아픔과는 비할 데가 못되네요. 코로나19 감염 후유증 탓인지 면역력이 약해진 탓인지 링거까지 맞았건만 폐렴이 되고 말았어요. 또 독한 항생제까지 한 움큼씩 넘기자니 정신이 맑지 못하고 후들거리면서도, 그 어린것이 열이 39도를 오르내린다니 그것이 더 걱정이 됩니다.


좀 살이 붙고 남들 클 때 같이 쑥쑥 자라야 하건만 자주 열감기가 방해를 해대니 야속하기만 합니다. 분명 크는 과정인 줄 알면서도 맘이 조급해지곤 합니다. 잘 견뎌내고 이겨내겠지요. 포켓문카드와 빵을 손에 쥐고 해맑게 웃고 있는 꼬맹이의 초승달 같은 눈이 보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에 좀 나아지면 우리 집에 온다 하네요. 또 아침마다 꼬맹이와 손잡고 포켓몬카드와 빵을 부지런히 사러 다녀야겠어요. 나와 꼬맹이를 이어주는 포켓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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