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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20. 2023

미련 때문에

참깨가 싹이 났어요.

미련!

우리는 어떤 일에 있어서 때로는 깨끗하게 단념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그 미련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단 한 번에 말끔히 포기하기에는 아쉬워 한줄기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뜻대로 되지 않음에 더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그 미련 때문에 아쉬움이 가득하여 어떻게든 잡아보려 애쓰고, 포기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련함으로 매달려 있던 작은 미련마저도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이 준 결과였습니다.


알렉스 퍼거슨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라고 했다지만 포기해야 할 때는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것도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련 때문에 되지도 않을 일에 매달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마음고생 하는 것보다는 빠른 포기가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포기는 곧 또 다른 일에 도전할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미련 앞에서 서성이다 멈추지 않는 시간 때문에 또 다른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후회하지 않았으면 니다. 오히려 그 열정이 식어버리기 전에 미련은 고이 접어두고 새로운 것에 희망을 가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며칠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어쩌다 보니 참깨를 씻어 고운체에 바쳐 놓은지가 이틀이나 지나버렸네요. 물기가 싹 빠져서 더 잘 볶아지겠지 하며 뒤집어 쏟는 순간 실낱같이 뾰족이 난 싹들이 고운체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네요. 아뿔싸! 하다 하다 이제 참깨가 싹이 나도록 방치해 두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매달려 있는 여름 끝자락에서 씻은 참깨를 이틀씩이나 내버려 두었으니 참깨도 이때다 싶어 생명력을 발휘해 버린 거였지요.


시골 오일장에서 사 온 값나가 국산 참깨를 그냥 버릴 수도 없고 열심히 인터넷을 찾아보았지요. 다행히 어느 분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네요. 건조기에 바싹 말려서 손으로 박박 비벼 싹을 제거한 다음 볶아 드시면 된다고요. 어쩌겠어요. 그렇게라도 해보려 했지만 건조기가 없으니 일단 다시 물에 담가 떠오른 싹들은 버리고 채반에 말려서 비벼보았지요. 생각보다 잘 비벼지지도 않고 끈질기게 붙어 있는 싹들은 좀처럼 분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빌만큼 비벼서 분리된 싹들은 버리고 살짝 볶아보았습니다. 웬걸요. 서서히 노롯 하게 볶아져야 할 참깨가 아직도 남아있는 참깨싹들이 먼저 타면서 새까매지고, 탄내가 나서 먹어보니 쓴맛이 올라옵니다. 실패였습니다. 건조기에 말려서 비빈다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제 경험상 아까워도 괜한 수고 하지 마시고 그냥 버리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어설픈 미련으로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시간 낭비하며 며칠을 애쓴 보람도 없이 힘만 들었네요.




미련이 때로는 좋게 마무리되어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빴으므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지요. 해보지도 않고 시간이 흐른 후에 어찌해 볼걸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해봄으로써 좋은 경험이 되었고 또다시 실수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앞으로 참깨가 싹이 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참깨를 씻어 물기가 빠지는 대로 바로 볶아서 아까운 참깨를 버리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발동했던 그 미련 때문에 겪은 특별한 경험 때문입니다. 정성을 쏟은 시간들이 아까웠지만 어쩌겠어요. 다시 볶았습니다. 흑~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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