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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12. 2023

만나도 보고 싶은걸요

유난히 높고도 파란 가을하늘의 솜털 같은 구름 사이에서 해사하게 웃음 지으시던 두 분의 모습이 언뜻언뜻 피어오르다 흩어지곤 합니다.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을 가을날의 청량한 바람소리가 씻기우고,  어느 결엔가 날아온 산까치가 고운 노래로 반가이 맞아줍니다. 늘어진 가지에는 여름내 쏟아지던 햇살과 영롱한 산이슬이 실어다 준 바람결에 알알이 익어간 밤송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입을 한껏 벌리고 튼실한 알밤을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네요.


새순이 연둣빛으로 물이 들던 봄날에 올랐던 그 길은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허리춤까지 자라버린 풀숲으로 변하여 난한 여정을 예고합니다. 몇 시간을 달려왔으니 돌아설 수도 없고 먼저 성큼성큼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 보았지만 금세 엄마야! 아이고 아버지! 소리가 멈추질 않습니다. 눈에, 코에, 입에 거미줄이 걸리고, 고요하던 벌레들에 영역을 나그네가 침범했으니 여기저기서 쏘아대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네요. 그런다고 물러설 마음이 일도 없으니 그저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산비탈길을 20여분 넘게 헐떡이며 오르자 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풀씨들이 온몸에 달라붙어 색이 말이 아닙니다. 지난 아버지 기일에 코로나19 감염으로 참석하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과, 추석마저 다가오니 그리움이 겹겹이 쌓여 두 분이 계신 이곳에라도 오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무더운 날씨에 산길을 오르기엔 무리가 있겠다 싶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지요. 그렇게 약해서 어쩐다냐고 딸을 걱정하실 때는 언제고, 헉헉거리며 오르는 둘째 사위 등에 땀이 배어들어 젖어오는 셔츠에만 미안한 마음이 드시겠지요.




당신들께서 살아온 고단했던 인생길만큼은 어림도 없겠지만 두 분을 만나러 올라가는 그 길은 어찌 그리 힘들던지요. 그래도 살아생전의 흔적들을 찾아 떠난 하루의 일기는 때론 슬펐고, 그 아련함으로 목이 메고, 그립고 행복했습니다. 아직도 어제일처럼 쉽사리 떠오르며 수저를 들 때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 얼굴도, 엄마얼굴도 담겨집니다. 참 맛있게 드셨지요. 더 자주 사드릴걸, 더 많은 음식들을 같이 먹을 걸 싶었습니다.


주말이라 좀 더 서둘러 출발했지만 서해안 고속도로는 여전히 기다란 차량의 행렬들로 시간만 흘려보냅니다. 어차피 온통 하루를 두 분을 위해 준비했으니 마음만은 느긋했지만 눈치 없는 위장은 채워달라 아우성이네요. 찍어둔 목적지에 도착하여 양푼이 동태찌개를 주문했습니다. 알도 추가했고요. 친정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맛집 동태찌개 식당입니다. 친정집에 갈 때마다 '아버지 뭐 드시고 싶으세요' 하면 이 집에서 만나곤 했습니다.


언제나처럼 동태알을 추가해서 '어이 시원하다' 하시면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얼큰한 국물을 연신 떠 드시곤 하셨지요. 동태 몇 토막과 부드러운 고니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들면 큼지막하게 썰린 두부와 탱글탱글하게 익은 동태알이 고소함에 정점을 찍습니다. 말캉하게 익은 무는 덤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하게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싶습니다. 아버지가 유난히도 좋아하셨던 동태알. 수북이 담아드려도 맛나게 다 드시곤 하셨었는데 정작 몇 수저 떠먹으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네요.


빈자리로 남아 있는 아버지, 엄마의 그 자리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습니다. 왜 여전히 생생히 떠올라 목이 메게 하는지 그래도 감사합니다. 두 분의 흔적을 좇으며 그날의 일들을 다시금 곱게 펼쳐볼 수 있으니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 봅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약주 한잔 올리고, 엄마가 좋아하시던 달달한 믹스커피도 한잔 올려드렸습니다. 어느새 산자락을 돌고 돌아 불어온 바람에 두 분에 숨결이 묻어온 것만 같습니다. 당신에 터를 손수 마련해 놓으시고 그리도 흡족해하셨었는데 참 좋으네요. 두 분께서 매일을 그러하시듯  사시사철 마를 일 없는 예당의 물길에 마음 적시고, 병풍처럼 두른 산중턱에서 바라보는 넘쳐나는 절경에 흠뻑 젖어봅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버지, 엄마가 그리운 날에는 이렇게 한 번씩 올게요. 

자꾸만 보고 싶어서

제눈물이 쏟아지기 전에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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