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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09. 2023

그리운 날에는

잊고 싶지 않아서

불타오를 듯이 이글거리며 한여름의 태양빛이 들판을 녹여버릴 듯이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챙 넓은 일모자를 푸우욱 눌러쓰시고 작은 체구보다 더 높이 자라 버린 풀들을 자근자근 파헤쳐 뽑아내실 뿐 그 어느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으셨다. 아무리 일이 많은 시골일지라도 그 더위에 밭고랑에 앉아 일을 하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그뿐이랴 아무리 한여름에 소낙비가 온몸을 적셔대도 그 비를 다 맞으시며 당신에 업보인양 그 호미질은 멈추지 않으셨다.


한평생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엄마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앞도 뒤도 옆도 보시지 않고 묵묵히 하실 뿐이었다. 그런 엄마가 나는 싫었다. 적당히 남들처럼 더울 때는 쉬고, 비 올 때는 그 핑계로라도 좀 쉬면 좋으련만, 그저 일만 해대는 엄마가 내 엄마여서 속상했다. 하지만 엄마는 늘 그러셨다. 쓰는 사람이 있으면 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엄마는 그렇게 평생을 땅을 파서 벌고, 길쌈을 해서 벌고. 누에를 키워서 벌고, 그렇게 벌어서 당신 위해 써보지도 못하고 가셨다.


작고 가녀린 체구로 새벽 4시부터 일과를 시작하여 한치의 여유로움도 없이 하루를 꽉꽉 채우시고 에너지가 바닥이  후에야 꿈결에 들곤 하셨다. 엄마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당신에 온몸을 바쳐 일만 하셨을까. 아버지께서는 엄마가 그렇게 벌어도 아침을 드시면 말끔한 옷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 다방으로 출근을 하셨다. 짙은 화장에 눈웃음 흘리는 다방아가씨들이 타주는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실없는 농담으로 오전을 보내셨다. 뜨끈한 해장국으로 점심을 드시고 자네 한잔, 나한잔 친구분들과 거나하게 한잔 걸치신 후에야 저녁 무렵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셨다.


물론 준수한 용모에 체격이 좋으셨던 아버지께서도 젊으신 날에는 엄마보다 더 많은 일을 하셨다. 그런 두 분의 수고로움으로 인하여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아버지께서는 노년을 당신 하고픈 대로 회장님 소리를 들으시며 당당하게 즐기셨다. 하지만 엄마는 늘 변함이 없으셨다. 오히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단정한 의복을 챙겨드리고, 싫은 소리는커녕 다행스럽게 생각하셨다. 선대 어르신들께서는 모두 하나같이 단명을 하셨다. 회갑을 넘기신 분이 없으셨기에 엄마는 그 점쟁이에 말을 철석같이 믿으셨다. 아버지는 주위에 여자가 있어야 장수를 하신다는 그 말 같지도 않은 그 말을.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일만 하셨을까. 가시기 전에 물어볼 것을. 엄마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지 이제와 너무 궁금하다. 그냥 아버지만 옆에 계시면 그게 다였을까. 어쩌면 엄마에 세상은 자식도 그 누구도 아니고 아버지뿐이었을지도. 두 분에 그 살가운 다정함을 무엇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느 절절한 순애보에 비할 수 있으랴. 오늘은 그런 두 분을 만나러 간다.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순 없지만 '엄마! 왜 그렇게 혼자서 묵묵히 일만 했어' 물어보고 싶다. 엄마가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길래 그리 일만 하고 살았느냐고 묻고 또 묻고 싶어 진다.

그랬던 엄마를 잊고 싶지 않아.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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