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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08. 2023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읽은 책과의 이별식

요즘 며칠째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써 놓았음에도 무언가 겉도는 느낌이고 마음에 들지 않고요.  왜 그럴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 때문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요즘에 한 것이라고는 책을 읽었다는 것뿐입다. 그것도 2권씩,  4권의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오랜 시일에 걸쳐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문화차이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고.....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너무 많은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수많은 독자들의 한결같은 소설에 대한 칭찬 때문이었을까요. 그 칭찬의 대열에 합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책을 읽고 어떠한 감정이 들건간에 이렇게 힘겨워한다는 것은 분명 내게 다르게 다가온 그 무엇 때문이겠지요. 내가 생각했던 전개가 아니라 해서 이리 불쾌해할 일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모든 것은 작가의 마음인 것을 참 철없이 못나게 굴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자 그제야 정리가 되는 듯싶습니다. 독자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가볍게 읽고 아 그렇구나 하면 되는 것을 주인공이 되어 연기를 하고 미처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연기자처럼 그럴 일이 아님을 뒤늦게서야 알아차리다니 이 소설 뭐지 싶습니다.


대단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읽었건만 내게 남겨진 여운은 허탈함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을 읽고는 도대체 다른 사람들에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여 리뷰를 찾아보았습니다. 칭찬일색입니다. 난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많은 분량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여러 부분에서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대니 좀처럼 페이지수가 줄어들지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재미없어도 읽기 시작한 책은 무조건 다 읽어야 한다는 습관 때문에 기를 쓰고 읽었지요. 그것은 그 작가의 스타일인데, 내가 불편하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작가는 영어로 썼을 것이고 번역을 거쳐 한글판으로 나왔을 것인데 어순이 다르다 보니 읽는 내내 집중이 어려웠습니다. 이질적이고 생경한 표현들 때문에 때로는 몇 번을 다시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나에 부족한 이해력을 슬퍼하면서요.


책을 다 읽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과는 달랐기에 더 오래 잔상으로 남아 다른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되짚으며 이해하고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직면했습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서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던 케이시, 그녀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조셉 맥리드에게서 빚투성이인 그녀가 무모하게 카드로 책을 샀을 때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조셉은 떠나며 아내의 모자들을 그녀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케이시에게 스며들어 속상해하고 슬펐었나 봅니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케이시 그녀의 인생을 응원하고 사랑해주싶습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파친코]의 저자 이민진. 앞의 책과는 확연히 다르게 술술 잘 읽혔습니다. 당연히 무대는 미국이 아닌 한국과 일본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번역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면 시간의 차 일수도 있고,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쓰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만에 두 권을  읽어버렸습니다. 양진과 선자의 삶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집중해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케이시만큼 나를 잡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이민진의 소설이 주는 아니 케이시가 남긴 여운 때문에 참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니 이제 훌훌 털어버리려고 도종환 님의 말캉말캉한 산문집과 마주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긴 터널을 뚫고 가을을 만났습니다. 나뭇잎이 새벽바람에 몸을 씻으며 탐스런 열매를 키우있습니다. 감나무 가지에 이는 그 바람에 억새도 춤추고 파란 가을하늘도 여물어 갑니다. 오랜만의 새벽산책에 몸을 맡기고 유유자적 정원수 사잇길을 휘저으며 걸어 보았습니다. 나에 글쓰기를 찾아서 새벽댓바람도 아랑곳없이 새벽달이 지키고 있는 그 길에 내 마음을 내려놓으러 갔습니다. 이제 글이 써질 것 같습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내 마음에 고운 집 지으러.

매거진의 이전글 100번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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