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째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써 놓았음에도 무언가 겉도는 느낌이고 마음에 들지 않고요. 왜 그럴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 때문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요즘에 한 것이라고는 책을 읽었다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2권씩,총4권의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오랜 시일에 걸쳐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문화차이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고.....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너무 많은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수많은 독자들의 한결같은 소설에 대한 칭찬 때문이었을까요. 그 칭찬의 대열에 합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책을 읽고 어떠한 감정이 들건간에 이렇게 힘겨워한다는 것은 분명 내게 다르게 다가온 그 무엇 때문이겠지요. 내가 생각했던 전개가 아니라 해서 이리 불쾌해할일이아닌데도 말이지요. 모든 것은 작가의 마음인 것을 참 철없이 못나게 굴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자 그제야 정리가 되는 듯싶습니다. 독자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가볍게 읽고 아 그렇구나 하면 되는 것을 주인공이 되어 연기를 하고 미처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연기자처럼 그럴 일이 아님을 뒤늦게서야 알아차리다니 이 소설 뭐지 싶습니다.
대단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읽었건만 내게 남겨진 여운은 허탈함이었습니다. 오죽하면'백만장자를 위한공짜음식'을 읽고는 도대체 다른 사람들에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여 리뷰를 찾아보았습니다. 칭찬일색입니다. 난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많은 분량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여러부분에서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대니 좀처럼 페이지수가 줄어들지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재미없어도 읽기 시작한 책은 무조건 다 읽어야 한다는 습관 때문에 기를 쓰고 읽었지요. 그것은 그 작가의 스타일인데,내가 불편하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작가는 영어로 썼을 것이고 번역을 거쳐 한글판으로 나왔을 것인데 어순이 다르다 보니 읽는 내내 집중이 어려웠습니다. 이질적이고 생경한 표현들 때문에 때로는 몇 번을 다시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나에 부족한 이해력을슬퍼하면서요.
책을 다 읽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과는 달랐기에 더 오래 잔상으로 남아 다른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되짚으며 이해하고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직면했습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서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던 케이시, 그녀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조셉 맥리드에게서 빚투성이인 그녀가 무모하게 카드로 책을 샀을 때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조셉은 떠나며 아내의 모자들을 그녀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케이시에게 스며들어 속상해하고 슬펐었나 봅니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케이시 그녀의 인생을 응원하고사랑해주고 싶습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파친코]의 저자 이민진. 앞의 책과는 확연히 다르게 술술 잘 읽혔습니다. 당연히 무대는 미국이 아닌 한국과 일본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번역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면 시간의 차일수도 있고,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쓰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만에 두 권을 다읽어버렸습니다. 양진과 선자의 삶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집중해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케이시만큼 나를 잡지는않았습니다. 이건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이민진의 소설이 주는 아니 케이시가 남긴 여운 때문에 참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니 이제 훌훌 털어버리려고 도종환 님의 말캉말캉한 산문집과 마주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긴 터널을 뚫고 가을을 만났습니다. 나뭇잎이 새벽바람에 몸을 씻으며 탐스런 열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감나무 가지에 이는 그 바람에 억새도 춤추고 파란 가을하늘도 여물어 갑니다. 오랜만의 새벽산책에 몸을 맡기고 유유자적 정원수 사잇길을 휘저으며 걸어 보았습니다. 나에 글쓰기를 찾아서 새벽댓바람도 아랑곳없이 새벽달이 지키고 있는 그 길에 내 마음을 내려놓으러 갔습니다. 이제 글이 써질 것 같습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내 마음에 고운 집 지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