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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17. 2023

그곳에 가면

오래된 책의 향기

한눈에 다 보이고도 여유로움이 느껴지 아주 작은 공간에 손때 묻은 책들이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 아파트 한쪽에는 은 독서실 겸 문고가 있습니다. 조금은 색이 바래고 들쑥날쑥 제각각에 모양들로 세월을 입은 책들이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다아지기를 바라는 간절함 느껴집니다. 하지만 한주에 읽을 수 있는 양이 있기에, 간택되지 못한 책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남기며 몇 권을 들고 나왔습니다.


문고는 가끔 아파트에서 신간을 새로 구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주민들께서 기증해 주신 책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입주한 지 벌써 9년이나 되었으니 초창기에 기증받은 책들은 발행된 지 더 오래된 책들이겠지요. 오래된 책냄새, 이 냄새를 참 좋아합니다. 수십 년 수백 년 흐른 고서는 아니지만 적당히 묵어서 풍기는, 어느 곳에서도 맡을 수 없는 묵은 책방에서 만의 여릿한 향기가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며 그동안 책을 읽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글쓰기에만 매달리다 언뜻 정신 차려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에 글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부럽게도 너무 잘 쓰시는 거예요. 좋은 글들 찾아 구독을 누르는 일도 쉽지 않아서 뒤늦게서야 종이책들을 읽기 시작했지요. 너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글쓰기인지라 쓸수록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얄팍한 밑천이 들통났거나 바닥나버린 것이겠지요.


며느리가 마음 써주며 사준 책들과 집에 있던 책들을 뒤적이다 이도 다 읽어버려 언젠가 몇 번 갔었던 문고를 다시 찾았습니다. 새로운 책들을 사서 줄줄이 쟁여볼까도 했지만 한번 문고를 다녀온 후에 그 생각을 미루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책들이지만 다시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게로 온 책들, 또 내 마음을 거쳐 다른 이에게 건네지는  행위들이 갑자기 숭고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독서실과 같이 운영되고 있기에 청소년 도서들이 대부분이지만 언젠가는 이곳에 와서 여유롭게 책도 읽어볼 작정입니다. 많은 책들이 제 손길이 다아지면 즐거워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겠어요. 한 권 한 권 읽어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겠지요. 책 읽기 안성맞춤인 이 가을에 좋아하는 책향기 속에 묻혀서 마음껏 읽어보려 합니다. 문고를 지키고 계신 분이 그러셨어요. 책도 오래된 책이 더 좋은 것 같다고요.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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